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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자들의 도시
  • 편집국 편집자
  • 등록 2020-12-01 16:34:42
  • 수정 2020-12-03 16: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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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도 공동체다
시흥시 방구석독서클럽에 참여하여 쓴 98학번 김상진 동문의 독후감

소설 없는 삶

올해 42살. 정확히 TV 세대다.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 챙겨 보고, 화제 드라마는 몰아서 본다. 주로 TV 보느라 몇몇 유튜브 채널을 보거나, ‘킹덤’ 시리즈 본 것 외에는 없으니 유튜브, 넷플릭스 천하에 조금 뒤처진 셈. 직장에서 학습 도서를 읽거나, 업무 관련 책, 친구가 추천해 주는 책 정도 읽지 않으면 그다지 책을 읽지 않는다. 그러니 소설은 후 후 후 순위다. 그래도 몇 년에 한 번 가끔 영화관 가는 기분으로 댄 브라운을 읽는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으며 댄 브라운이 가볍게 느껴졌다. 그야말로 주제 사라마구가 ‘따꺼(큰형)’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댄 브라운에 비해 쉽게 어렵게 읽은 부분들도 있었다. 리얼함과 묵직함이 그렇다. 댄 브라운 자리에 주제 사라마구를 놓고 종종 읽을 것 같다. 소설이 없는 삶에 좋은 작가를 추천해 주셔서 감사하다.

 

 


                             

의사와 의사 아내

가장 감정 이입한 캐릭터는 의사와 그의 아내다. 의사는 자연스럽게 리더 비슷한 위치가 되지만 시종일관 유약하다. 그는 종종 자신의 원칙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결단력이 없으니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가장 큰 문제는 우리에게 조직이 없다는 거야. 각 건물마다, 각 거리마다, 각 지역마다 조직이 있어야 해. 

정부가 필요하다는 거로군요, 아내가 말했다. 

조직이 있어야지, 인간의 몸 역시 조직된 체계야, 몸도 조직되어 있어야 살 수 있지., 죽음이란 조직 해체의 결과일 뿐이야.

눈먼 사람들의 사회가 어떻게 조직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겠어요.

스스로를 조직해야지, 자신을 조직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눈을 갖기 시작하는 거야.

어쩌면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 실명의 경험은 우리에게 죽음과 고통만을 주었어요, 내 눈도 당신 병원처럼 쓸모가 없어요.

p 416

의사의 주장에 동의한다. 결국 ‘조직된 시민의 힘’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조건이 너무 나쁘다. 모두가 눈이 멀어 서로 신뢰 수 없는데 어떻게 조직할 수 있을까. 그저 생존 아니 연명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상황 말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를 감시 감독하는 군인과 체계가 있지만,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이미 원칙도 통제력도 잃은 곳 아닌가. 무슨 조직을 말하고 무슨 희망을 말하랴. 그러니 의사는 무기력할 수밖에. 나의 삶, 나의 일에서 가치와 원칙을 말하지만 자주 무너지는 나를 본다. 또 다른 의사로 살아가는 것이다.

 

사회복지에는 당사자를 주인공으로 돕고자 하는 흐름이 있다. 정부나 비영리단체에서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재화, 서비스가 아닌 당사자 스스로 대안, 희망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식이다. 물론 나도 당사자주의, 강점 관점에 동의하고 스스로 이룰 수 있게끔 돕고자 한다. 학부 때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를 읽고 짧은 소감을 나눈 적 있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도와야 한다’ 정도의 표현이었다.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한 선배의 딱 한마디 ‘그들이 아닌 우리로'.

 

‘그들이 아닌 우리’라는 관점을 가장 잘 보여준 사람이 의사 아내다. 그는 눈이 멀지 않았지만 눈이 먼 사람들 곁에서 같은 삶을 산다. 그저 살 뿐 아니라 함께 고통을 겪으며 적극적으로 눈먼 자들을 돕는다. 당사자의 주체성을 살리기 위해 실천하는 사회복지사로서 치열한 고민이 이것이다. 내 삶은 사회적 약자인 당사자와 다른데 어떻게 우리로 함께 하고 도울 수 있을까. 의사 아내처럼 같은 포지션으로 같은 경험을 해야 만 할까.

 

 


                             

공동체주의

주제 사라마구의 대안은 소규모 공동체인 듯하다. 의사, 의사 아내, 첫 번째로 눈먼 자, 그의 아내, 안대 노인, 선글라스 여성, 엄마 잃은 아이가 공동체를 이루는 식이다. 노인, 중년, 아이까지 삼대로 이루어지며, 선글라스 여성이 아이의 엄마 역할을 하는 것 모두, 유사 가족의 표상이다. 

                             

초기에만 해도 가족의 유대감이 어느 정도 남아 있어, 친척들이 눈먼 사람들을 끌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일이 많았다.

p 339

먼저는 가족이다. 하지만 그마저 무너진 후 남은 자는 앞서 말한 유사 가족 형태의 소규모 공동체다. 국가 시스템이 붕괴되고, 개인주의가 만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공동체, 마음 터놓을 수 있는 공동체가 하나의 대안이다. 나의 사회복지도 마찬가지다. 결국 지역운동의 길로 가고 있다. 지역에서 함께 대안을 만들고, 서로 마음 터놓는 사이를 만드는 것. 물론 모든 일을 그리할 수 없고 계속 부딪히는 일들이 있지만 그걸 추구한다. 그래서 사라마구의 대안이 일종의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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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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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min2020-12-01 18:22:12

    책 사진 좀 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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