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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거인'을 보고나서
  • 편집국 편집장
  • 등록 2021-03-08 16:10:49
  • 수정 2021-03-28 18: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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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6 서은혜 동문의 글

영화 <거인>을 보고나서


오순이는 꼭 끌어안고 자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방에 불을 끄고 이층침대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오순이는 들떠서 이불을 팡팡 두드리고 베개 두 개를 가지런히 늘어놓는다. 나를 위해서 자기가 해놓은 것을 보라고 재촉하는 것이다. 화답하듯이 씨익 웃어보이면 침팬지처럼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하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싱글 침대 위에 나까지 올라가면 오순이가 누울 데가 없을까봐 자꾸만 구석으로 몸을 옹크리게 된다. 그때마다 오순이는 내 팔을 잡아당겨 가슴팍에 머리를 파묻고 배 위에 다리를 얹어서는 꽈배기처럼 마구 엉켜든다. 이제는 자자고 조용조용 등을 두드리는 동안에도 오순이는 자꾸만 신이 나서 들썩거리고 매달리고 키득거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머리를 쓰다듬고 눈썹을 쓰다듬고 등을 쓰다듬고 하는 사이, 아홉살 오순이는 아기처럼 숨결이 고와져서, 팔도 다리도 힘을 풀고 나른하게 잠이 든다.


작년 1월부터 아동청소년 그룹홈에서 돌봄노동자로 일을 하고 있다. 오순이는 그룹홈 막내고 나는 그룹홈 이모다. “나는 왜 엄마 아빠랑 떨어져서 여기서 살아야 하는 거야.” 오순이가 나에게 질문을 한 것인지, 신세한탄을 한 것인지 분간할 수는 없었다. 다만 이런 식의 이야기로 어두운 마음을 내비치는 날이면, 본인도 설명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여 패악질을 벌이곤 했던 터라, 조금이라도 빨리 오순이의 마음을 읽어내고 그 안에서 차오르는 공기를 안전하게 빼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오순이가 오늘 엄마가 보고 싶었구나. 이리 와, 이모랑 꼭 끌어안자.”


자신의 부모나 유전자, 더 나아가 태어나 사는 시대와 환경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어찌보면 개개인의 삶이란 자연 법칙이라는 강제와 우연이라는 바람으로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영화 <거인>의 주인공 영재는 참 운이 없었다. 아빠는 책임감이 없었고 엄마는 무능력했고 동생은 나약했다. 사는 게 숨이 찬다던 영재는 가톨릭 그룹홈 ‘이삭의집’을 제발로 찾아갔다. 

영화 포스터에는 제목 ‘거인’ 옆에 ‘아픈 만큼 큰다’는 글자가 나란히 인쇄되어 있었다. 절망을 먹으며 마음만 거인처럼 자라버린 아이를 그린 영화로구나, 짐작을 했다. 그렇다면 불가역적인 환경이나 물리적 구조의 제약을 극복하고, 거인같은 풍모를 지닌 아이가 그려지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하게 되었다. 


최우식 배우 [영화 거인 중]오판이었다. 열일곱 살*이 되어 그룹홈에서 떠나야 할 처지가 된 영재는 살아갈 방편을 마련하느라 신심도 없으면서 신부가 되겠다고 했다. 그룹홈 원장 엄마 아빠의 비위를 맞추고, 성당 신부의 신임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영재는 수시로 그룹홈 후원물품 창고를 털었다. 훔친 물건을 내다 팔아서 돈을 챙겼다. 저 대신 친구가 누명을 써도 해명은커녕 도둑질을 멈추지도 않았다. 같은 처지의 그룹홈 친구 범태가 원장 아빠에게 밉보여 그룹홈을 나간 뒤로, 길바닥에서 잠을 자든 밥을 굶든, 걱정을 하는 법도 없었다. 오로지 그룹홈에서 쫒겨날지도 모를 본인의 안위만 걱정할 뿐이었다. 심지어는 자기가 위태하다고 느끼는 순간 범태를 경찰에 신고해 버리기도 했다.


몇년 전 고모의 아동학대로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조사를 받았다던 삼돌이의 말이 기억났다. “내가 어떤 식으로 말을 하든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았어요.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내 말을 무시해 버리거나, 너무 엄청나서 과장을 한다고 생각을 할 것 같았어요.” 프리모 레비가 쓴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서도 이와 같은 말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가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우리를 믿어주지 않을 거야.” 다행히도 희생자들이 우려하거나 두려워하던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이것이야말로 실제 나치수용소에서 포로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서도 매일밤 악몽처럼 시달리던 생각이라고 했다. 너무나도 엄청난 것이어서 누구도 본인의 말을 믿어주지 않으리라는 생각 말이다.


영재가 어른들에게 그룹홈을 떠나면 갈 곳이 없다고 도움을 요청하는 대신 거짓말을 하고, 어른들에게 이만저만해서 돈이 필요하다고 상의를 하는 대신 도둑질을 하는 것 역시, 이와 같은 ‘자체 필터’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꺼내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해버리고 말조차 꺼내지 않는 패턴 말이다.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듣고 존중하고 지지하는 어른 대신에, ‘방임하고 학대하는 어른들에게 장기간 시달린 아이들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본다면, “배은망덕한 새끼”하고 다그치던 어른들이 입을 다물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영재는 안전하게 살아갈 방편이 필요할 뿐이었다. 후원물품을 팔아서 한몫을 챙기겠다거나, 친구를 신고해서 출세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교회 장학금 앵벌이를 강요하는 아빠에게 시달리지 않고도, 의식주 걱정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정도의 안전한 생활을 원했을 뿐이었다. 남들은 굳이 열망하거나 요청하지 않아도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리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친구를 배신하는 영재의 삶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남들은 살고 싶다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을 ‘그룹홈’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매 순간 자신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보아야 하는 삶이 참 구차하고 부당하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 전에는 오순이가 안경 모양을 이상하게 하고 다니는 걸 보았다. 안경을 짜부라뜨려서 안경알을 빼고, 심지어 그 안경알은 어디다 버렸는지 삐뚤어진 안경테에 안경알을 하나만 끼운 채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자꾸 그러고 다니면 눈이 짝짝이가 되어서 못생겨진다고 하니까, 다급하게 한쪽 눈을 찌그러뜨려 애꾸눈을 하고는, 이러면 이제 괜찮을 거라고 억지를 부렸다. 요 녀석, 심술이 나고 마음이 허한데 이모들이 빨리 알아주지 않아서 아주 데모를 하고 나섰구나 싶었다. 


환경의 제약을 극복하고 거인의 풍모를 풍기는 주인공을 기다렸던 내 시선 때문에 끊임없이 시달렸을 우리 그룹홈 아이들을 떠올렸다.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나의 일상과 마찬가지로, 때로는 위태롭고, 때로는 행복했던 아이들의 일상을 조금은 더 편안하게 껴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때로는 그야말로 절망을 먹고 마음만 거인처럼 자라난 괴물의 모습을 가끔 드러낸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저 아이들이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하여도 구차하지 않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안전하고 싶다는 욕구, 차별받고 싶지 않다는 욕구, 동정받고 싶지 않다는 욕구를 내세우는 그 어떤 순간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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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복지법에 따라 복지시설 보호대상아동은 만 18세가 되면, 지내던 시설, 위탁가정, 그룹홈을 나와서 자립을 해야 한다. ‘퇴소’라고 하기도 하고, ‘보호 종료’라고 하기도 한다. 단, 영화 설명에서 17세가 되면 그룹홈을 떠나야 했다는 언급이나, 그룹홈 원장 아빠가 고등학생 아이들에게 자꾸만 나가야 한다고 종용하는 장면은, 조금 의아했었다.

어쨌거나,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관심이 계속되어야 하고, 지원은 확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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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거인>은 김태용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자신이 넘어서야 할 기억을 담았다는 점에서, 편하게 앉아서 보는 것조차 불편할 정도로 어둡고 괴로운 이야기들을 주로 담아놓았다. 사실 내가 겪어본 그룹홈은 그렇게 어둡기만 한 곳은 아니었다. 그룹홈 안에서도 즐거운 일은 도처에서 일어났고, 심지어 행복한 순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조금은 두려웠다. 그룹홈 아이들의 괴로움을 이 짧은 글 위로 끌어당기는 순간, 별 것도 없는 몇 글자 내 글이, 아이들을 마냥 불쌍하고 괴물 같은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 아이들은 다 잘 지낸다고, 당신이 그렇게 불쌍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고 해버리면, 우리 사회가 이 아이들을 잊어버리고, 어른의 책무마저 저버리는 것은 아닐까하고 또 걱정을 하게 되었다. 

위에서도 썼다시피, 아이들은 그야말로, 때로 행복했고, 때로 위태로웠다. 이 글을 읽는 그 어떤 이의 삶과도 다름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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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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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dm2021-03-27 10:35:58

    학부 2학년때 만호 선배님 소개로 SOS 마을에 정기봉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 가족으로 구성된 집에서 뭔가를 열심히 했는데 기억은 나지 않네요 ..
    엄마라 부르고 누나.언니라고 서로 위해주는 곳이었는데.  일반인들은 이런 법이 있다는 것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현실을 알려주는 이야기라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졌으면 좋겠습니다.

    30년도 더  지난 기억인데, 세상은 여전히 같은 아픔들이 끊이지 않네요,

경북대학교 사회복지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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