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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 지음)
  • 편집국
  • 등록 2021-03-14 14:03:02
  • 수정 2021-03-15 16: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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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학번 나예원의 글

 


 

우선 이 책은 고2 때 자율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읽게 된 책인데, 그때 베스트셀러로 등록되어 있었던 것 같다. 

독후감의 처음이 다들 그렇듯 제목을 보고 흥미로웠다고 할 수 있겠다. 

글쎄, 차별적인데 선량하다는 모순 때문이었을까


 


 

'결정장애.'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우물쭈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너무 많이 고민하는 나의 부족함을 꼬집는 간명한 말 같았다. 나 스스로를 비하하는 의미를 담아 많은 대화에서 수없이 사용했다. 그리고 이 말이 어느 날 사고를 쳤다.

 

혐오 표현에 관한 토론회가 있던 날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 장소를 급하게 큰 곳으로 바꿔가며 열린 토론회였다. 토론자로 함께한 나는 토론 중에 이 결정장애라는 말을 썼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 모두 결단을 내리자는 말을 하던 와중이었다. 토론회가 끝나고 식사를 하러 가는 버스 안에서, 참석자 중 한 분이 나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왜 결정장애라는 말을 쓰셨어요?"



짧은 한마디였다. 그건 질문이 아니었다. 나의 잘못을, 더 정확하게는 혐오 표현을 하지 말자던 사람이 결정장애라는 말을 사용하는 모순을 지적한 것이었다. (중략) 결정장애라는 말이 왜 문제인지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그는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습관적으로 장애라는 말을 비하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무언가에 '장애'를 붙이는 건 '부족함' '열등함'을 의미하고, 그런 관념 속에서 '장애인'은 늘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겨진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한동안 멍해진 기분으로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사실 많이 놀랐다. 내가 장애인을 차별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학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특권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발견'인 이유가 있다. 일상적으로 누리는 이런 특권은 대개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조건이라서 많은 경우 눈치채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권은 말하자면 '가진 자의 여유'로서,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태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많은 사람이 적어도 한 번쯤 시외버스를 타보았을 것이다. 비행기를 타거나 그것도 비즈니스석을 타지 않는 이상,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교통수단 탑승을 특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시외버스 좌석에 앉아서 자신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의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누군가가 시외버스 탑승을 요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시외버스에는 휠체어가 탑승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차표를 사도 버스를 탈 수가 없다. 타인은 갖지 못하고 나는 가진 어떤 것, 여기서는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특권이다. 

 

 

즉 거리는 중립적인 공간인 듯 보이지만 그 공간을 지배하는 권력이 존재한다. 익명의 다수가 시선으로써, 말이나 행위로써, 혹은 직접적인 방해나 법적 수단을 통해 그 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불온한 존재들을 단속하는 데 동참한다. 입장할 자격 없이 공공의 공간에 침범한 사람, 거리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을 추방하거나 교화시킨다. 이런 시선의 익명성과 편재성 때문에, '낯선 존재'인 소수자들이 느끼는 일상의 시선 혹은 '감시'의 압박은 삶을 만성적으로 불안하게 만든다.

 

 

그래서 때로는 소수자가 스스로 숨어 있기로 결정한다. 

 


사회복지학과 진학을 희망하면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감수성을 키워왔다고 생각했기에 차별 의식이 적은 사람이라고 자부해왔었다. 하지만 프롤로그를 넘기며 아니었구나 깨달았다. 나도 필자만큼이나 ‘결정장애’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해왔었다. 결정을 못 한다는 약점을 장애라고 치부하는 그것에 대해 잘못됨을 알지 못했다는 점이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장애인이나 성 소수자, 다문화가족, 난민 등 우리 사회의 약자들에 대한 차별 당사자가 인식하지 못하는 다양한 차별들에 대해 읽으며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을 당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차별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했고, 한편으로는 내가 차별당하고 있었지만 당연하다고 넘겼던 부분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소수자는 소수자의 편이 아니다


소수자들이 서로 차별하는 사례들도 많이 보인다. 인간이기에 자신이 처한 상황이, 불평등이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인간이기에 자신의 고정관념에 갇혀 타인을 차별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모두가 원하는 목표인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연대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평등해지기 위한 이 해체의 시대가 번거럽고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는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이다. ‘왕족, 귀족’이라는 소수가 누리던 자유를 ‘민중’이라는 다수가, 그리고 ‘사회 바깥에 놓여 있던 모두’가 향유하게 될 때까지 세상은 아직 더 변해야한다.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마음이 대부분 사람이 가진 본성일 것이다. 이를 벗어나 평등을 향해 가는 과정은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차별적인 말, 행동을 하는 것을 인지하고 반성하는 태도가 중요하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전공 공부를 많이 하거나, 많은 도서를 읽지 않았기 때문에 좁은 시각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여러 측면을 공부하고, 식견을 넓힌 후 다시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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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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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j2021-03-26 18:20:01

    이런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살피면 미래가 더 좋아질것이라고 본다. 화이팅. 예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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