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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고미숙지음)
  • 편집국
  • 등록 2021-03-24 16:4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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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 김행섭

고미숙선생님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리뷰

 

상담분야 이외에 다른 부문에 대해서도 책을 읽으며, 저녁 시간을 더 유익하게 보내고자 하는 마음에 읽기 시작한 이 책.

그런데 기대이상!

연암 박지원 선생의 매력에 풍덩 빠진 것 같다. 

물론 고전평론가인 고미숙 선생님의 충실한 재해석이 있었기에 친근하게 읽어갈 수 있었다. 그저 국사책에 한 두 줄 나왔던 이용후생학, 허생전의 저자라는 것이 연암선생에 대한 지식의 전부였던 내 무식의 한계가 쇼킹하게 박살이 나는 것 같았다. 

도대체 내가 이렇게 까지 감동, 쇼킹, 내 무식의 소치를 탓하게끔 만든 이 책의 매력에 대해 나 스스로에게도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다. 

 

1. 뭐니뭐니 해도 고미숙 선생님의 충실한 재해석~

 

감칠맛 나는 글솜씨, 깊이 있는 사유, 진정성 있는 그러면서도 유머러스한 전개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와~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내시는 구나~시대적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이 없이는 쉽지 않을 일이었을 것이다. 

 

2. 연암선생의 수려한 문체의 비밀은.

 

수목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리좀(덩이줄기)라는 낯선 개념을 알게 되었다. 수목이라면 뿌리를 중심으로 일정한 방향을 향해 가지를 뻗겠지만, 리좀은 마치 방향도 없고 접속하는 대상에 따라 자유롭게 변이하는 칡덩쿨같은 특성을 지닌다. 칡은 좀 잘라낸다 해도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를 알 수 없듯이.

 이처럼 연암선생의 문체는 다양하고 그 시대의 감정을 넘어서는 자유로운 것이어서 주변인에게는 인정을 받았지만, 당시 군주인 정조는 문체반정(소설, 수필류의 글이 백성들에게 무익하므로 금지시키는 정책)의 주혐의자로 연암을 생각했을 정도였으나, 연암선생은 이리저리 정조의 경계를 피하는 재기를 발휘한다. 

 연암의 손자가 좌의정이 되었을 때도 연암의 글을 펼칠 수 없었을 만큼 금서에 해당되었다고 한다.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연암의 글들이 빛을 보게 되었다.

 

3. 연암선생의 노마드적인 삶

 

자유로우면서도 박식하고 시적이면서도 현실적이다.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도 청나라의 어떤 사람들과도 접속을 시도하고 친구가 되려고 한다.

이것은 유목적 능력(nomad)과도 연결되어지는 것 같다. 

유목민 즉 노마드는 유목을 삶의 조건으로 하여 한 곳에 머물지 않으며 항상 새로운 삶의 조건을 찾아 움직이는 사람들로서 이미 정착민인 우리와는 매우 대비된 개념이라고 한다.

  

“어디서든 들러붙어 능동적으로 삶을 구성하되, 그 대상이나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것, 어떤 것과도 접속할 수 있고 언제든 다른 존재로 변이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유목적 능력이라 할 수 있다.”(453쪽)

 

열하일기 속에 나타난 연암은 우리가 고정관념으로 알고 있던 양반의 모습이 아니었다. 

연암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고, 스무 살 무렵 과거준비에 몰두하려고 했지만. 잠도 자지 못하고 밥맛도 없는 우울증 같은 증상이 나타나면서 저자거리로 나가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떠도는 이야기를 글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울증이 극복되었다고 한다. 

당시 관직에 나가기 위해서 반드시 치러야 했던 과거가 연암의 눈에는 너무 속되게 보였던 것 같다. 편법을 쓰는 경쟁적인 모습을 보면서 일찌감치 관직으로의 길을 포기하게 된다. 

  

4. 연암선생의 이용후생의 뜻

 

연암선생을 이용후생학파로 분류하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구체적 이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연암선생은 열하로 가는 여행에서 중국(청나라)의 화려한 자금성에 대해서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청나라의 똥과 기와를 재활용하는 방법이라든지, 수레등 당시 조선보다 더 발전된 부분들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당시 조선에서는 청을 오랑캐라고 생각하고 무시하는 입장이 많았는데 이는 소중화주의라(중국의 영향을 받았으면서 주변나라들을 무시하는 태도)는 얄팍한 자존심을 내세우며 실제 더 나은 부분은 배우려는 마음을 가지지 못했던 양반들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것이었다.

 

5. 동물애호가였던 연암선생

 

연암이 처음 본 코끼리에 대해 놀라워하며 묘사한 대목(상기)은 정말 지금 어떻게 저렇게 세심하게 재치있게 묘사를 했나 신기할 따름이었다.

더불어 이국땅에서 만난 어떤 동물들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말사랑도 대단했다고 한다. 또 호질 등의 소설에서도 범의 눈으로 세상에 이야기를 한다든지, 사마 천의 글을 마치 어린아이가 나비를 잡으려는 동화 같은 모습으로 묘사한다든지 동물에 대한 연민과 깊은 관심을 보여준 동물애호가였다.

 

 

6. 열하까지의 엄청나게 빡센 일정을 소화하는 연암선생의 유· 연· 함

 

한창 더운 6월말에 출발하여 두달 여가 걸려 열하까지 가는 도중,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넜다는 유명한 장이 있다. 정말 생명을 건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연암의 태도는 한결같이 유연하다. 호기심을 가진 관찰자로서, 늘 붓과 벼루, 종이를 갖고 다니며 기록한다. 글을 쓰려고 먹던 술을 부어 먹을 갈기도 했다. 마부가 다치고 상황이 갑작스럽게 전개되는 상황에서도 불평을 하기 보다는 그를 말에 태우고 가기도 한다. 열하에서는 양반들이 상종도 하지 않으려 하는 변발의 청나라사람들과 밤낮 토론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엄청난 집중력을 나타낸다.

심지어 시장에서 벽에 있는 글을 베끼기도 하고, 청나라를 이해하기 위해 야간잠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책속에 소개된 많은 에피소드를 읽어보노라면 느껴지는 연암의 재치와 유머가 웃음을 자아낸다. 물론 그 속에 사람과 만물에 대한 존중과 따스함이 베어있다.

  

 그저 책을 읽고 생각나는 점들을 적어 보았는데 이 부분들 이외에도 다산 정약용선생의 삶과 비교해 놓은 보론에서는 정말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간 두 지성이 어찌 그리 다른 문체와 삶의 여정을 살아갔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나는 누구의 삶에 더 가깝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연암선생의 삶을 비판적으로 보자면 양반이기에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당시에도 잘 나가는 집안의 답답한 백수 청년의 삶이라는 세상의 평판을 들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관직에도 나가지 않고, 잡다한 글이나 쓰고, 또 친구라면 사죽을 못쓰고 함께 하려고 하고...

그런 연암선생이 2·3세기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에도 이렇게 멋있는 선배가 있었다는 것과 자기다운 삶을 소신 있게 살아낸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져왔다.

 

 

자신의 삶을 어떤 이념에 제한시키지 않고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또 유연한 물고기가 그러하듯

곤경의 물살을 타고 유머와 역설로 누구와도 친구가 되며

다가올 세상을 바라며

한 줄 한 줄의 엄청난 글들을 소명처럼 써내려가면서

연암선생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미래의 우리를 떠올렸을까... 

 

쉽지 않은 코로나 세상을 살면서 연암선생의 삶이 현재 우리들의 삶에 비추어 질 때, 새로운 삶의 비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고미숙 선생님이 글을 쓰신 의미와도 통하리라 생각된다. 

 

 

누구에게든 연암 박지원 선생님과 {열하일기}를 추천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87 김행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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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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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dm2021-03-25 17:08:47

    예전에 정약용 선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는데,  요즘 같으면  보수나  진보진영 어느 한쪽 간판달고. 친구들 끼리 사랑방에 모여서 막걸리 마시고 뒷담화 까던 사람이었더래요...
    나이가 드니까..  이제 그런  느낌 알듯 한데...


    내가 늙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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