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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국 대학생의 슬기로운 방학 생활. 청년인턴X경북대병원
  • 박병익
  • 등록 2021-05-20 20: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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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웰타임즈=박병익 ]


재작년 12월 초에 시작된 코로나 19의 무서운 맹위는, 사람들이 삶 전반에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를 겪도록 만들었다. 친구를 만나는 것을 넘어서, 한때는 사회를 멈추게 했고, 지금은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게 했다. 이런 얼어버린 사회에서 필자가 우연한 기회로 참여했던, ‘청년인턴’ 활동에 대해 경험을 나눠보고자 한다.

 

 참여목적은 굉장히 단순명료하다. 단, 한 번도 사회라는 곳에서 땀을 흘려 대가를 받아 본 경험이 없기에 그 목적 하나만을 가지고 지원했었다. 일을 시작한 초기에는, 청년인턴을 단순한 지칭으로만 여겼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보다 훨씬 많은 의미가 내포된 단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청년인턴의 뜻은 ‘청년, 즉 청춘과 인턴, 일을 배워가는 사람’ 정리하자면, 청춘을 배워가는 사람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는 생각을 한다. 지원하기 전에, 항상 부모님과 상의를 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께서 지금 의료계에 몸담고 계셔서, 코로나 19에 대한 걱정이 많으셨다. 특히, 병원이라는 곳은 환자들을 직접 대면하는 곳이다 보니, 만약 부모님이 완강하게 반대하시면 지원을 안 할 각오까지 마음속에 다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식 이길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라는 말처럼, 항상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매일 아침 마스크와 소독제를 챙기는 것을 조건으로 허락을 해주셨고, 덕분에,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배정받은 부서는 ‘국제의료사업팀’이라는 곳이었다. 이름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국제의료에 대한 전반적인 업무를 총괄하는 팀으로 영어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언어들도 요구되는 곳이었다. 필자가 맡은 주된 업무는 크게, 출국을 위한 검사 문진표 작성과 외국인 환자통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문진표 작성은 중국은 PCR 검사 외에 항체 검사가 있었기에, 뒤에 한 장을 더 써야 하는 것 말고는 크게 신경 쓸 문제는 없었다. 다만, 주의해야 했던 것은 국가마다 요구하는 검사지의 양식이 달랐고 특정 국가의 경우, 시시각각 변동되었기에 계속해서 확인해야만 했었다. 이 일도 물론 재미있었지만, 본 필자를 설레게 했고, 더 나아가 의료 통역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게 한 부분은 진료 통역이었다. 진료 통역은 순환기내과, 신경외과, 이비인후과 등, 통역이 필요한 과라면 언제든 뛰어갔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선생님께서 동행하셨는데, 일을 몇 개월 정도 하고 난 후에는 혼자서도 척척 알아서 가곤 했다. 보통은 예약된 외래 하루 전에 ‘몇 시, 어느 과 통역 필요함’이라는 메시지가 오면 확인하고 그 시간에 맞춰서 내려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 예외는 존재하였다. 예외적인 경험 중 필자의 머릿속에서 도무지 잊히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한날 "긴급. ICU에 통역 필요함"이란 안내를 받고 병원 안을 마치 단거리 경주하듯 뛰었던 적이 있었다. 일단은 긴급이라는 글자에 뭔가 일이 있다는 것을 느꼈었고 그 장소가 중환자실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었다. ICU는 Intensive Care Unit의 약자로 흔히, 중환자실 혹은 집중치료실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중환자실에 긴급 상황이라면, 외과적으로 봤을 땐 환자의 맥박이 떨어지거나 심장마비와 같이 환자의 목숨과 직결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분명 안내가 전달된 사람은 통역하던 필자이기에 들어가기 전에는 대체 무슨 이유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불렀던 이유를 알아차리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중환자실에 전화해서 “~~한 이유로 왔는데 문 열어주세요”라는 말을 하고, 들어가자마자 간호사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은 “코로나 의심 환자의 보호자와 통역이 필요해서 불렀는데, 괜찮겠냐?”라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을 들었을 때, 가장 첫 번째로 든 생각은 “내가 할 수 있을까?”와 함께 “코로나?, 들어가도 괜찮은 건가?”라는 의구심이었다. 의구심도 잠시, 어쨌든 왔으니 들어가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출입하기에 앞서, 전신 소독과 N95 마스크로 교체 후 출입했었다. 이날이 잊히지 않는 이유는 코로나의 실상황을 눈으로 목도했고, 의료진이 아닌 사람이 중환자실에 들어가는 경우는 극소수이기에,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일 것 같다. 이외에도 뇌척수액 배액술 수술(External Ventricular Drainage, 짧게는 E.V.D 혹은 Ventriculoperitoneal Shunt, 짧게는 VP-Shunt라고 부름), 탈장, 돌발성 난청과 같은 다양한 병과 여러 아픔을 가지고 병원을 방문하신 외국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었다. 

 

어떤 경험이든 해놓으면 새로운 경험을 하는 데 있어 불씨로 작용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진료실에 가서 했던 경우가 대다수지만, 전화로 입원을 위한 절차를 통역한 적도 있었다. 필자가 이 경험을 귀중히 여기는 이유는, 전화 통역을 한 경험을 한 번에 그치지 않기 위해 BBB 통역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BBB 통역 봉사는 생활 속에서 휴대전화로 제공하는 실시간 봉사로, 20개 언어를 지원하며 현재까지 약 4천 5백여 명의 봉사자가 활동하고 있는 활동이다. 이 활동은 교환학생이나 외국어를 능통하게 하고 싶은 친구들이 있다면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그런 봉사라고 생각한다. 통역 중에 고난도에 속하는 동시통역 능력을 기를 수 있으며, 각종 긴급 상황에 당황하지 않고 대처하는 능력을 함양함으로써, 나중에 외국에 나가게 됐을 때를 가정해보면 각종 비상 상황에 대처하는 충분한 연습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BBB 자원봉사에서 통역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외국병원에서 통역요청이 들어온 경우나 경찰서에서 외국인과의 소통이 안 돼서 요청이 들어오는 등, 사실상 전천후로 대비가 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생각한다. 

 

약 3개월 정도 쉼 없이 달려와서 긴 장정의 마침표를 찍고 나서야 느껴지는 것이 있다. 일의 목적이 과연 무엇일지 진정으로 고민해야, 평생 할 직업을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학의 문을 열고 들어왔던 작년만 하더라도, 단순히 공무원, 선생님과 같은 안정적인 직업만을 이상향으로 삼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이전의 이상향을 과감히 버리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에 대해 끊임없이 찾아가고 있다. 


병원에 잠시나마 발을 담가본 필자는, 이쪽 계통으로 진전해 볼 생각을 하고 있다. 의료 쪽으로 과를 살린다면, 의료사회복지사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영어를 공부해서 필자가 일했던 국제의료사업팀에 정식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일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필자 자신에 대한 의구심으로 “부족한 실력으로 할 수 있을까?”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했다면, 지금은 부족함을 인정하고 보완하며 채워나가는 데 의미를 두고 생활하고 있다. 새로운 길을 들어선다는 건, 양면적인 감정이 들 수밖에 없는 일인 것 같다.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 설렘과 함께 한 번도 안 가본 길이기에 오는 두려움이 항상 따라다니는 것 같다. 그러나, 두려움을 극복하고 앞으로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가는 방법과 용기를 배우는 게 앞으로 펼쳐질 일들에 대해 고민할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일에 대한 마침표를 찍었지만, 현재까지도 병원에 있는 선생님들과 지속해서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 선생님들은 “할 일이 없으면 다시 일 도와주러 얼른 오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씀하셔서 학기 중에 시간이 난다면, 한 번 정도는 가보려 생각 중이다. 우연히 참여하게 된 일에서 이처럼 많은 걸 느끼게 될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었다. 그래서 오히려 우연의 의미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마지막으로 시련이라는 것에 대해 필자에게 전혀 다른 관점을 선물했던 말을 남기며,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니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whatever does not kills you, makes you stronger” 

덧붙이는 글

20학번 박병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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