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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홈의 오순이
  • 편집국
  • 등록 2021-07-30 09: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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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6 서은혜 동문의 그룹홈 사회복지사의 이야기

내가 일하는 그룹홈의 막내 오순이와 같이 있을 때는 간단한 움직임에도 어려움을 겪고는 한다. 특히나 신이 나 있을 경우에 더욱 그렇다. 빨래를 걷으러 간다고 하면 “나도 도울래요.”하면서 내가 발을 디딜 자리마다 자신의 발을 엉겨붙게 만들어 둘이 춤추듯 걷는 모양을 만들어 버린다. 이모들이 싱크대 앞에 서서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나도 해볼래요.”하면서 팔을 걷어부치기 시작하면 그날 설거지는 한정 없이 길어진다고 보면 된다. 동화책을 펼쳐들 때마다 내 시야를 가릴 만큼 본인 머리를 집어넣으며 달겨드는 통에 글자를 읽어주기도 어려운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식탁 앞에 서 있다가 의자에 앉으려던 찰나였다. 그 어떤 순간도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되었는데... 무심코 엉덩이를 내밀다가 된통 엉덩방아를 찧고 비명을 지르게 되었다. 오순이가 나에게 말도 않고 의자를 빼내었던 것이다. 모양으로 봐서는 내 의자를 딛고 올라가 싱크대 상부장 안에 놓아둔 초코잼을 꺼내려 했던 것 같다. 

“으아아아악!”

“미 미안해요! 이모한테 초코잼 바른 샌드위치를 깜짝 선물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진짜예요!”

그 와중에도 내가 나동그라진 모양이 우스웠던지, 나를 바라보는 오순이의 눈에는 미안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소리 내어 웃고 싶은 마음을 꽉 눌러보겠다는 의지가 아주 이글이글했다. 꼬리뼈가 아파서 눈알 가득 피가 몰리는 느낌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순이의 그 비장한 표정을 보고나서는 그만 푸핫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일어나자마자 정색을 하고 잔소리를 늘어놓았지만 말이다. 


그룹홈에서 일을 하면서 행복한 순간 중 하나는, 이렇게 비장한 표정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아이가 선물한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을 때라고도 할 수 있겠다.

덧붙이는 글

얼마나 아팠을까? 그런데도 오순이를 먼저 생각하는 서은혜 선생님. 어쩜 저럴 수 있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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