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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혜의 그룹홈 생활일기
  • 편집국
  • 등록 2021-10-19 08:50:54
  • 수정 2021-10-28 15:4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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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2일, 그룹홈 보육사 일기>


지난 주 금요일, 32개월 된 윤슬이가 새로운 식구로 왔다. 가족이 함께 살 형편이 되지를 않아서 위탁가정에서 지내다가, 6개월만에 장기입소 결정이 나서 우리 그룹홈으로 오게 되었다. 윤슬이는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선생님과 상담기관 치료사 선생님 품에 안겨서 왔다. 본인의 세상이 6개월만에 또 다시 뒤집힐 것을 예감한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잔뜩 숨을 죽이고 주변을 살피는 모습이었다. 아니, 여차하면 바로 울어버릴 기세였던 것 같기도 하다.


금요일 밤은 나 혼자 근무를 서는 날이었다. 그러니까 윤슬이와 홀로 첫 번째 밤을 보내야 하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뜻이다. 언제 폭발할지 모를 울음을 꽉 잠그고 있는 저 작은 아이와 단둘이 남겨질 상황이 두려웠다. 치료사 선생님에게서 윤슬이를 받아안았을 때는 윤슬이의 심장이 어쩔 줄을 모르고 마구마구 뛰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윤슬이의 불안하고 무섭고 슬픈 감정까지 줄줄이 받아 안아든 느낌이었다. 어쩌면 내 심장이 더 뛰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마치 높은 건물에서 땅바닥으로 마구 떨어지고 있는 윤슬이를 혼자서 받아안아야 하는 임무라도 받은 것 같았다. 

“에고. 윤슬이가 많이 힘들구나. 앞으로는 더 많이 힘들지도 몰라. 그래도 이모가 곁에 있을게. 오늘밤에는 우리 둘이 꼭 끌어안고 자자.”


신기하게도 윤슬이는 울지 않았다. 가슴만 두근두근거릴 뿐. 윤슬이가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내 간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었으면 했다. 온몸의 기운을 다 끌어모아서 윤슬이를 끌어안았다. 교회도 다니지 않으면서 소리를 내어서 기도를 하기도 했다. 위탁모가 남겨놓은 쪽지에서 윤슬이가 잠을 자든 간식을 먹든 매 순간 기도를 해주었다는 내용을 보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두 팔로 윤슬이를 끌어안고 등을 잔뜩 옹크린 그 자세 그대로 동사무소로 가서 전입신고를 하고 집으로 오는 동안 한 시간 정도가 지난 것 같았는데, 그룹홈에 도착해서 거실마루 바닥에 윤슬이를 내려놓는 순간에는 그대로 탈진해서 누워있고만 싶은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환경 때문에 정신이 빠진 윤슬이를 두고 나까지 넋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싱크대 앞으로 가서 쌀을 씻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 기력까지는 없어서 동료에게 식사를 부탁했다. 32개월 아이도 잘 먹을 수 있는 걸로 한 그릇 배달 했으면 싶다고. 눈썹을 팔자 모양으로 치켜뜨고 나를 쳐다보던 동료가 고개를 크게 끄덕끄덕했다.


윤슬이는 울음을 참는 그 표정 위에 환한 미소를 얹기도 하고 놀란 토끼눈을 얹기도 했다. 그러나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다거나 잠을 자는 것만은 거부했다. 머리에 열까지 끓는 바람에 또 다시 부둥켜안고 병원을 다녀오고, 똥기저귀를 갈고, 네다섯 평은 채움직한 윤슬이의 짐보따리를 정리하는 그 시간들이 어찌나 길던지. 분명 이런 아기를 둘이나 낳아서 길렀었는데 속에서 악 소리가 날 만큼 새롭고 힘들고 괴로웠다. 그 와중에도 윤슬이는 줄곧 내 모습만을 주시하며 마음을 의지하다가도, 여전히 낯설고 생소하기만 한 내 존재에 의탁해야 하는 상황이 공포스러웠던지 퀭한 눈빛을 지으며 나를 외면하고는 했다. 


마침내 모두가 잠든 깜깜한 밤. 윤슬이는 10분마다 한 번씩 깼다. 잠이 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정신을 잃고 머리를 떨구는 순간, 반사신경이 발동되는 것 마냥 눈을 치켜뜨고 엄마를 찾으며 소리를 질렀다. 조용히 몸을 쓰다듬는다거나, 이모 여깄다고 이모는 네 곁에 꼭 있을 거라고 달래고 나설 때마다 윤슬이는 눈으로 나를 확인하고, 다리나 손을 뻗어서 몸이 닿는 것을 수차 확인하다가도 본인이 찾던 그 엄마가 아닌 것이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렇게 10분마다 한 번씩 울다보니 급기야는 목이 쉬고 마구 구토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밤이 너무 길다는 생각을 했다.


목,금 근무를 마치고 나서 토,일을 쉰 뒤, 오늘(한글날 대체공휴일인 월요일) 다시 출근을 했다. 아이들이 사는 집인 그룹홈에는 빨간날이라고 쉬는 법이 없다. 빨간 날에 출근을 한 나를 보고 윤슬이가 웃었다. 토요일 아침, 새로운 근무자와 함께 윤슬이를 두고 퇴근하는 길에, 윤슬이는 이제 나를 보고 “엄마”라고 부르며 가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고 마구마구 울었더랬다. 나까지 몸통이 떨리면서 울음이 터지려고 해서 아주 혼이 났다. 두 밤만 자면 다시 돌아올 거라고 했던 그때 그 약속을 지킨 나를 보고 윤슬이가 재차 기뻐하는 것만 같아서 기분이 두 배로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또다시 머리에 열이 끓고 콧물을 줄줄 흘리고 밥을 안 먹겠다고 하고 알아듣을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떼를 쓰는 윤슬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은 여전히 괴로웠다.


목욕이 싫다는 윤슬이 앞에서 알몸으로 비눗방울을 불고 노래를 부르고, 똥을 싸고도 아무 말 없이 돌아다니다 빨갛게 되어버린 엉덩이를 억지로 붙들어서 연고를 바르고, 냉장고며 서랍이며 죄다 열어보고 다니는 사이 ‘32개월 아기 식단’을 검색해서 두부달걀국을 끓이고 쇠고기 볶음밥을 하고 감자국을 끓이던 오늘 하루. 아, 윤슬이의 손과 우산 두 개를 동시에 잡고, 걸어서 7분 거리의 소아과에 다녀오기도 했구나.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윤슬이는 지지리 말도 안 듣고.


3박 4일간 잠과 사투를 벌이던 윤슬이가 저녁 8시쯤이 되자 정말로 잠이란 것을 제대로 자기 시작했다. 나도 덩달아 그대로 기절해 버리고만 싶었다. 하지만 하루종일 윤슬이와 내 곁을 맴돌던 오순이가 몸을 배배 꼬며 나타나서 말을 걸었다. “이모, 오늘밤에는 꼭끌앙, 꼭끌앙 해주면 안되요?” ‘꼭끌앙’이란 ‘꼭 끌어안자’는  뜻으로, 꼭 끌어안고 재워달라는 말이다. 지난주 목요일까지 그룹홈 막내이던 오순이와 둘이서만 써오던 말이다. 


오순이가 누워있는 이층침대로 올라갈 때마다 계단에서는 삐그덕 삐그덕하고 큰소리가 났다. 그러면 오순이는 그 소리만 듣고도 어서 오라고 오른손으로 이불을 퉁퉁하고 쳤다. 아홉살 오순이의 몸은 아직 작고 여리고 보드라웠다.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고 머리를 쓰담쓰담 쓰다듬는 사이, 오순이는 내 손을 잡아당겨 입을 맞추고 나서 본인의 손을 내 입에다 갖다대는 의식을 한 번씩 치르고는 했다. 이모도 그렇게 입을 맞추라는 것이다. “이모 잘 자요. 이모 너무너무 사랑해요.” “그래, 이모도 오순이 너무너무 사랑해. 오순이 잘 자.” 동생이 오면 절대로 다시 끌어안고 자지 말자고, 이모는 더이상 그렇게 해 줄 수가 없다고 누누이 일렀었는데, 오순이가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멀찌감치 서서 부탁하는 모습을 보고서는 고만 나도 무너져 버렸다. 그래, 내가 이 녀석하고 처음 같이 살기 시작했을 때도 많이 힘들었었지. 


이리저리 몸을 뒤척거리다 기침을 하다가 또다시 조그맣게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하는 윤슬이 곁에 몸을 눕혔다. 내 인기척에 마음이 놓였던지 윤슬이는 금세 울음을 그쳤다. 내일 아침에는 6시에 일어나서 다섯 아이들이 먹을 밥을 짓고, 늦도록 학원을 다니는 전교 1등 셋째의 도시락 반찬을 싸야 한다. 아니 셋째가 밥 먹기 전에 철분제 챙겨먹는 것을 알려주는 일도 빠뜨리면 안 된다. 그 와중에도 막내 윤슬이가 밥을 제대로 먹는 것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끼어든다.


오늘 밤에는 하루종일 윤슬이를 쫒아다니느라 미처 정리해두지 못한 보육일지며, 운영일지, 양호일지, 영수증 정리에 회계장부 정리까지 모조리 마쳐두었어야 했는데, 숨통 좀 터보려고 신세한탄 몇 자 적고 나니 일이 마구 처밀려서 숨이 더 막히는 느낌이다. 눈앞에 번히 보이는 저 서류 몇 장이라도 더 처리하든가, 아니면 쓰던 글 마지막 문단 처리라도 똑 떨어지게 하고 나면 속이 좀 시원해질 것도 같은데, 정말 아무것도 할 힘이 없다. 이대로 모든 것을 놓고 나는 빨리 잠을 자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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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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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min2021-10-28 15:45:19

    혹시 그룹홈에 아이들 필요한 것들 기부 받기도 하나요? 집에 어린이 자전거랑, 동화책 등등 여러가지가 있는데, 도움이 된다면, 전달해 주고 싶기도 한데....  아마도 많은 분들이 참여할 수도 있을 듯 하여 여쭤봅니다.

경북대학교 사회복지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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