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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여기서 일을 할까
  • 편집국
  • 등록 2021-11-01 14: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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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은혜의 그룹홈 보육사 일지

화요일 아침 여덟 시 이십칠 분. 그룹홈의 조용한 아침이 시작되었다. 둘째 셋째 넷째는 아침을 먹고 나서 가방을 메고 학교로 갔다. 재수하는 첫째는 수시 합격 소식을 확인하고 난 후로 점심때까지 늦잠을 잔다. 나는 윤슬이와 오순이가 온 집안에 어질러놓은 물건들을 대강 치운 뒤 세탁기를 돌리고 나서 책상 앞에 앉았다. 줄곧 나만 따라다니던 윤슬이는 이때를 놓칠세라 얼른 내 무릎 위에 올라앉았다. "이모는 글 쓸 거야. 윤슬이 이제부터 이모 방해하면 안 돼." 원래대로라면 나는 지금쯤 오늘 자 일지 정리를 시작해놓고 공문을 살피고 행정업무를 시작해야 한다. 무릎 위에 윤슬이가 올라앉든 말든.


그렇지만 나는 지금부터 글을 쓸 것이다. 그래야 내가 여기서 계속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당장이라도 도망을 치고 싶다는 어떤 목소리에 사로잡히고 말 것 같다. 책상 서랍에 넣어둔 형광펜을 꺼내서는 입술까지 노랗게 칠해버린 윤슬이가 어젯밤 열한 시까지 잠도 자지 않고 체력을 자랑하던 것을 생각하면, 그 사이 둘째와 넷째가 쇳소리를 내면서 싸우던 것을 생각하면, 그 사이 서류업무는 손댈 새도 없이,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던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빨리 도망을 가야 한다고 내 안의 어떤 목소리가 자꾸만 속삭이는 것만 같다.


도망갈 기회는 분명히 있었다. 나는 계약직이었다. 2020년 1월부터 15개월간 육아휴직 대체인력으로 그룹홈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룹홈에는 두 명의 보육사와 한 명의 시설장이 일곱 명 이하의 아이들과 함께 생활을 하게 되어 있다. 그룹홈 일이라고는 하나도 몰랐지만 그간의 경력과 학력을 근거로 계약직 시설장 자리에 앉아서 일을 하다가 된통 고생을 했다. 누구나 하는, 아이 좀 돌보고 집안 살림이나 하는 그룹홈 일이라고 내심 얕보던 마음이 제대로 뒤집어져 버렸다. 각종 감사와 4년치 보건복지부 시설평가를 비롯한 행정이며 노무, 회계 작업은 차라리 나았다. 보육사 한 명 한 명의 애환과,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위염과 심장 두근거림에 수시로 시달리게 되었다.


계약 기간이 끝나자마자, 동굴로 들어가 겨울잠에 빠져버리는 곰처럼 누구도 건드리지 말라는 식으로 휴식에 사납게 집착해 보기도 했지만 나는 가끔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리고는 했다. 그 와중에도 그룹홈에서 헤어졌던 네 명의 아이들이 보고 싶었던 것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회’에서 겪어왔던 여느 직장들과는 참으로 다른 곳이었다. 그룹홈은. 아이들이 '이모'에게 주는 애정에 한번 맛들리면 이렇게 사람이 위험해지는 것이다.


‘이모~ 오늘 학교 갈 때 한 인사가 마지막으로 집에서 한 인사라고 생각하니 헤어짐이 조금 실감이 나는 것 같아요ㅠ 하루, 이틀이 지나면 더 실감이 나겠죠? 마지막으로 한번 안아보고 싶었는데 이모 눈에 고인 눈물을 보니 저도 아침부터 울 것 같아 빨리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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