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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혜의 그룹홈 생활일기
  • 편집국
  • 등록 2021-12-29 07:3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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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년 12월 27일, 그룹홈 보육사 일기>


새벽 다섯 시. 

화장실에 가고 싶지만 계속 눈치만 보던 중이었다. 그냥 이부자리를 확 걷어내고 일어나면 되는 일이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나와 한 방에서 잠을 자던 윤슬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성통곡을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34개월 윤슬이는 감기에 걸려서 몸이 좋지를 않았다. 밤새 선잠을 자며 나를 괴롭혔다. 그런 저를 방에 두고 화장실에 다녀오던 날에는 이부자리에 구토를 할 때까지 울음을 터뜨리고는 했다. 

햇빛이 반짝이는 낮에는 괜찮다가 꼭 정신이 왔다갔다하는 새벽만 되면 그렇게 나를 붙잡고 나동그라졌다. 아니 정 그러면 화장실에 같이 가줄 수도 있잖아. 그것까지 싫다고 해버리면 이모는 어떡하라고.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윤슬아 이모 화장실에 갔다 올게. 이모 어디 가는 거 아니야. 문을 열고 마루로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사이 뒷전에서 윤슬이의 울음 소리가 온 집안을 때려부수고 있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울든지 말든지 어쩔 수가 없었다. 이모 금방 왔잖아. 윤슬아 괜찮아. 자자. (자식... 또 한바탕 이불 위에 토를 해놓았다.)



다시 눈을 뜨자 큰 아이들은 교복을 다 입은 채로 내 방문 앞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깜짝 놀라 확인한 시계. 일곱시 십삼분. 

둘째와 셋째가 학교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서야 하는 시간이었다. 이모 일부러 안 깨웠어요. 우리가 아침 못 먹고 나간다고 속상해 하지 마세요. 오늘 점심엔 맛있는 거 먹을 거예요. 학교 다녀올게요. 나오지 마세요. 밤새 시달리다가 그만 아침 나절에 한잠이 든 모양이었다. 내가 속상해 하는 걸 어떻게든 달래보고 싶었는지 아이들이 애써서 웃는 얼굴을 만들고 있었다. 어찌어찌 집을 나서는 아이들을 배웅하고 나서도 마음이 영 좋지를 않았다. 

그 와중에도 윤슬이는 나를 부르며 신경질을 내었다. 그래 윤슬아 이제 이모 너한테 간다.



다리를 조금 휘청거렸던 것도 같다. 그래서 더 급하게 의자에 앉으려던 찰나였다. 아야. 화가 난 윤슬이가 내 의자 위에 빨대물병을 던져놓은 모양이었다. 물병 손잡이의 모서리가 엉덩이뼈를 콕하고 찔렀다. 하. 온통 윤슬이 물건으로 어질러진 방안도 전쟁터 같았지만, 잠도 못 자고 할 일도 제대로 못 해낸 내 마음도 전쟁터가 된 것 같았다. 윤슬이는 또 울었다. 곁에 와서 누우라고. 이번엔 초등학교 2학년인 오순이를 학교에 보낼 시간이었다. 윤슬아 이제 제발 그만해.



왠만하면 꺼내지 않는 초코맛 시리얼을 끄집어 내었다. 그것을 본 아이들이 반색을 하며 식탁 앞에 앉았다. 오순이가 그릇 안에서 분홍색 별모양 마시멜로를 찾아내어서는 우와하고 소리를 내며 웃었다. 윤슬이도 오순이를 따라 하얀색 마시멜로를 꺼내들고 나를 보며 웃었다. 그러나 시계를 보니 더 이상 이렇게 하하호호 시간을 보낼 때가 아니었다. 늦게 일어난 오순이를 서둘러 학교로 보내려면 머리 묶는 시간이라도 줄여야 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오순이가 시리얼을 떠먹는 동안 꼬리빗과 고무줄을 갖고 와서 서둘러 머리를 빗겼다. 오순이 예쁘네. 오순이 머리를 멀끔하게 빗기고 나니 이제는 머털도사처럼 꾀죄죄한 윤슬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썹 위로 딸름하던 앞머리가 두어달 사이 눈을 찌르지 않을까 싶게 자라있었다. 그걸 보는 내 눈이 괜히 찔리는 것처럼 애가 쓰였다. 내 밥그릇에 부으려던 시리얼통을 다시 내려놓고, 잡기도 어려울만큼 가늘고 보들보들한 윤슬이의 머리카락을 붙들어 사과꼭지 모양으로 묶어주었다.



윤슬이 예쁘네. 동생이 생겨서 좋다던 때는 언제고, 주말내내 윤슬이가 미워죽겠다고 광광거리던 오순이가 제법 언니같은 말투로 칭찬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윤슬이가 다리까지 흔들면서 소리를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새벽 내내 패악을 부리고 사람을 괴롭히던 녀석의 표정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가장 사랑스러운 윤슬이의 얼굴이었다. 마음속 어떤 덩어리같은 것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윤슬이 이쁘네. 내 밥그릇에도 시리얼을 부어서 숟가락을 들고 아이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코밑으로 진득하고 누런 콧물을 잔뜩 묻힌 윤슬이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내 몸을 쓰다듬고 얼굴을 문지르고 또 내 얼굴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배알도 없이 웃음이 실실 나왔다. 그 순간 아이들이 이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별모양 마시멜로를 집어들고 똑또구르르 웃음소리를 내고 있는 아이들이 곁에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 것 같기도 하다. 발끝에서부터 곰지락곰지락 어떤 것이 조금씩 차오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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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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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abbit22022-01-27 05:06:18

    많이 지치실 것 같은데 아이들을 향한 마음이 아침빛 같이 환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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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학교 사회복지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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