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 메일전송
서로를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
  • 편집국
  • 등록 2022-04-24 11:36:56

기사수정
  • 87 김행섭

꽤 오래전 상담을 했던 한 친구가 떠오른다.

여러모로 힘든 상황에 처해있던 청년이었는데.. 그 친구의 상황이 너무 안타까워던 나는

“최근 힘든 상황도 겪었는데... 진로고민이 많고, 가까이에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어서 그동안 참 외로웠겠어요.” 라며 성심성의껏 공감을 했다.




그런데 그 친구의 대답은 썰렁하게 돌아왔다.

“저 괜찮은데요, 안 외로운데요...”

웬만하면 나의 절절한 공감을 좀 받아주면 좋으련만..

나름 확신에 차서 공감을 했던 나는 좀 머쓱해져서

순간적으로 우리는 맞추기 어려운 코드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안맞는 코드”라는 생각이 나의 기운을 좀 빠지게 했을 것이고 당연히 그 친구에게도 그런 느낌이 전달되었으리라.

코드가 잘 맞는 사람들 간에도 “안 맞는 부분”은 있기 마련일텐데..


나는 참 외로웠을거라고 생각되는데... 

내 이야기가 00씨의 마음을 잘 읽지를 못했네요.. 그럼 어떤 마음일까요..?”


지금은 이렇게 여유있게 다시 물어보면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때 나의 에너지는 기운이 빠지는 나를 쳐다보는데 쓰였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내가 공감을 배운 것은 교재나 책에서 뿐아니라, 그동안 만나온 내담자분들에게서 였다.

결국 공감이 된다고 느끼는 것의 주체는 내담자이고, 공감을 받는 사람쪽에서다.

아무리 화려하고 멋진 문장의 공감이라고 해도 상대방에게 맞춤형이 아닐때에는 그냥 그런 말이 되는 것 같다.

물론 내담자를 공감하기 위한 상담자의 노력까지 전달되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만.



상대방을 생각하는 나의 생각이나 마음과는 다를 수 있는 

너의 마음을 알고자 하고, 


물어봐주고, 

기다려 주는 것, 

이런 태도 역시 멋진 공감이 아닐까?



내가 네가 아니고 네가 내가 아니기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는.




[출처] 서로를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작성자 상담하는언니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경북대학교 사회복지학부
facebook
사회복지학부 재학생 유투브 채널
인스타그램
최신뉴스더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