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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할아버지의 연극
  • 성희자 편집부
  • 등록 2022-06-02 19: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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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룹홈 보육사 일기 -수영 작가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5233490343387517&id=100001798100408


그룹홈 아이들과 함께 사는 빌라는 LH 공공임대주택이다. 공공기관인 LH에서 취약 계층에게 시가보다 낮은 금액으로 빌려주는 집이다 보니, 아이들이 사는 그룹홈 말고는 거의 독거노인들이 살고 있다. TV가 고장이 나거나 낯선 고지서가 날아올 때마다 도와달라고 찾아오는 2층 할아버지, 오전 11시쯤이 되면 까무잡잡한 개를 데리고 산책 다니는 3층 할머니, 새벽마다 기침을 하는 3층 할아버지, 그리고 옆집 할아버지가 가장 익숙한 이웃이다.

 

2층 할아버지는 대문을 열어놓고 생활하는 날이 잦았다. 그러면 몇 년은 묵은 군내 같은 것이 건물을 가득 채우고는 했다. 3층 할머니는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김치찌개나 생선조림 냄새는 가끔씩 났지만, 바짝 졸인 그 된장 냄새는 거의 매일 올라왔다. 옆집 할아버지는 대문을 닫아놓고 지냈다. 그런데도 철로 된 대문을 뚫고 퀴퀴한 냄새 같은 것이 새어 나오고는 했다. 그 냄새가 한 번씩 강하게 퍼져서 우리집까지 파고들어 오는 날에는, 아이들이 코를 틀어막고 방향제를 뿌리면서 법석을 떨었다. 그럴 때마다 이모들은 이렇게 소리를 지르고는 했다. “야! 너희 방이나 좀 치워라.”

 

옆집이 비었을 때마다 복지관에서 반찬을 가지고 온 사회복지사가 우리집 벨을 눌러 할아버지의 안부를 묻고는 했다. 옆집 할아버지는 독거노인으로 등록된 분인 것 같았다. 사회복지사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간 날은 아마도 몸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 입원한 날이 아닐까 혼자 짐작해 보기도 했다. 몸을 구부정하게 해서 천천히 걷는다던가, 안색이 어두운 것을 보아서는 어딘가 깊은 질병을 앓고 있는 것도 같았으니까. 그러나 늘 검은 모자를 눌러써서 그런지 몰라도, 흰머리가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키가 크고 골격이 굵어서, 노인이라고 하기에도 뭣하고 중년이라고 하기에도 힘든, 사실은 좀 애매한 할아버지였다. 차라리 아저씨라고 불러야 하나 매번 고민을 하게 되었다.

 

어느 한가한 일요일 저녁, 그룹홈 인터폰에서 갑자기 벨이 울렸다. 우리 그룹홈은 일부러 주소를 공개하지 않은 곳이라 이렇게 누가 온다는 기별도 없이 벨을 울리면 매번 긴장을 하게 되었다. 아이 대부분이 아동학대로 그룹홈에 오다 보니, 아동학대 가해자들이 여차저차 그룹홈을 찾아와서 다시 해코지하지는 않을까 늘 노심초사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누, 누구세요?"

"옆집입니다."

인터폰 화면을 확인해 보니 진짜로 옆집 할아버지였다. 늘 그렇듯 비닐봉지를 들고 서 있었다. 대개는 그 안에 라면, 마스크, 휴지 같은 것들이 담겨있었다. 물건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거나 ‘○○교회’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경우가 많은 걸 보면, 교회나 복지관에서 받은 후원 물품들을 조금씩 나누어서 들고 오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컵누룽지, 마스크, 연양갱이 담겨있었다. 마음은 감사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불안했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모습이나, 집에서 나는 냄새, 그리고 의외로 날카로운 눈매 같은 것 때문에 자꾸만 경계하게 되었다. 괜히 문을 열어주었다가 여자아이들에게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나, 하고 별별 걱정이 다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할아버지라고는 하지만 나 혼자 격투를 벌여서 이길 자신은 없었다.

 

"안녕하세요? 매번 이런 걸 챙겨주시네요. 감사합니다만, 저희는 정말 괜찮아요."

"이거 정말 별거 아녜요. 제가 혼자 살다 보니 이런 걸 다 못 먹어요. 애들이라도 먹으라고 가지고 왔어요."

"아, 감사합니다만, 저희는 정말 괜찮아요."

"제가 청각장애가 있어서 귀가 잘 안 들려요. 그래서 텔레비전을 크게 틀어야 해요. 저 때문에 시끄러울까 봐 늘 미안했어요. 잘 좀 봐달라고 이렇게 인사를 드리는 거예요.“

 

아래층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도 다 들리는 빌라였다. 옆집 할아버지가 켠 TV 소리에 시달린 적은 단연코 한 번도 없었다. 의사소통에 문제를 느낀 적도 없고 말이다. 할아버지가 지금 어떤 연극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번에는 투게더 아이스크림 한 통, 그 저번에는 딸기 한 봉지. 먹다 남긴 것이 절대 아니라고 했다. 마치 의심이라도 받은 것처럼. 할아버지가 올 때마다 우리가 머뭇거리는 걸 알아챈 모양이었다. 그럼 아이들 주려고 새로 사 오신 거냐고 했더니, 마트 다녀오는 길에 하나를 더 샀을 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또 어색하게 연극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사실 할아버지의 그 연극 때문에 내 마음속 어떤 경계가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었다. 상처를 받아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연극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 정말 뭣하지만, 받기만 하는 사람의 아픔을 그야말로 잘 이해하는 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너희가 요구한 적은 없지만, 이 귀한 것을 베푸는 나의 아량과 자비에 감사해야 한다는 엄포 하나 없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주고 싶은 마음을 가득 담은 연극 같았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전에 준 딸기는 맛있었냐고, 그거 비싼 거라고 생색을 내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 그쪽은 왜 아무것도 내놓는 법이 없느냐는 타박도 없었다.

 

네 살, 열 살 아이들 손을 잡고 빌라 계단을 오르다가 옆집 할아버지를 마주치던 장면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넘어지는 상황을 매번 염두에 두는 사람처럼, 계단 난간을 꼭 붙잡고 조심조심 걷거나 멈추어 서는 와중에도, 인사만큼은 늘 그렇게 반갑고 정중히 했다. “네~ 고마워요. 네~ 건강하세요.” 아이들에게 하는 인사말로는 어울리지 않게 높은 격을 쓰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사람을 대하는 품격’ 아니, ‘타인을 돌보는 품격’이란 게 있다면, 내가 지금 여기서 그걸 목격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저자의 덧붙이는 글 5분 짜리 영화 <랜드 레이디>를 보면 기차를 타고 북미로 불법 이주를 시도하는 중남미 이민자들과 베라크루즈 지역의 철도길 옆 작은 마을, 여성들의 공동체 ‘라 페트로나'가 나온다. 살 길을 찾느라 목숨을 거는 이민자들의 험난한 여정을 외면하지 못해, 궁핍한 살림도 아랑곳없이 이름도 모를 이들의 음식을 지어 열차로 달려가는 ‘라 페트로나'를 보면서 5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다고 생각했다. 기차가 속도를 늦춘 틈을 타 비닐봉지에 담은 음식을 힘껏 던지는 여자들, 그 한 봉지 받아보겠다고 온 몸을 내밀어 용을 쓰는 사람들. 제9회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팜플렛에서 <"가난한 자들은 남을 돌보지 않는다"는 편견을 깨는, 멕시코 여성공동체 '라 페트로나'의 이민노동자 돕기 실천 프로젝트의 현장>이라는 표현을 보고 무너져서 마구 오열했던 기억이 났다. 옆집 할아버지는 아마도, 내 곁에서 "가난한 자들은 남을 돌보지 않는다"는 편견을 깨는 존재 중 한 명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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