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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 다는 것
  • 편집국
  • 등록 2022-08-14 09:4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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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영 작가


***늙는다는 것


  미래 남편 얼굴 보는 법이 유행한 적이 있다. 밤 12시 정각, 얼굴에 후레쉬 불빛을 비춘 상태로 칼을 입에 물고, 폐가 재래식 화장실에 앉아 거울을 들여다보면 미래 남편의 얼굴이 보인다는 거다. 초등학교 때 처음 들은 뒤로, 중학교 다닐 때까지 친구들과 몇 번이고 우스개 소재로 삼고는 했다. “그 고생을 하고 바들바들 떨면서 거울을 들여다봤더니 네 남편 얼굴이! 네 남편 얼굴이!”하는 식으로 말이다. 만약 그런 방법을 써서 할머니가 된 내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어떨까, 하고 상상을 옮겨본 적이 있다. 아무래도 그것은 설렘보다는 두려움 쪽에 더 가까운 일 같다.

  요즘은 거울로 내 얼굴을 보는 것도 그리 즐겁지 않다. 한 손으로 핸드폰을 잡고 어떻게 각도를 잡아보아도 카메라 화면 속에 잡힌 내 턱은 이중으로 쳐져 보인다. 셀카 찍는 일도 이제 재미가 없다. 즐겨 입던 허리 잘록한 원피스는 딸들에게 죄다 물려줘 버렸다. 몇 년 전만 해도 몸매를 더 다듬어서 비키니를 입고 워터파크에 가보리라 결심을 하기도 했는데 마흔여섯이 된 이제는 그런 꿈을 꾸지 않는다. 거울을 볼 때마다 “너도 이제 나이를 먹는구나.”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내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지, 누가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고 상상한 것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구호가 도처에 만연해 있다. 이 와중에 흰 머리 몇 가닥과 군살 때문에 의기소침해져서 자꾸만 위축되는 내가 하찮아 보여서 혼자 있는 곳에서조차 부끄러움 같은 것을 느꼈다. 나이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그러나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안티에이징 상품 광고들을 보면 비단 나만의 두려움인 것 같지는 않다. "늙는다는 건 굉장히 불쾌한 일이에요. '아름답게 늙는다'는 건 개수작이라고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하고 똑같아. 안 되는 일이거든요." 영화배우 윤여정씨가 칸 영화제에 다녀와서 인터뷰한 말이다(조선일보, 2010.5.17.). 

  나보다 여섯 살이 더 많은 남편은 한 번씩 은퇴 뒤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고 싶어한다. 바닷가에 집을 하나 얻어서 둘이서 살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집 앞에 작은 텃밭을 가꾸면서 가끔씩 통발 속에 잡힌 물고기로 반찬을 해먹고 둘이서 함께 책을 읽고 쓰면서 살면 행복할 것 같지 않냐고 물었다. 그 마을에 아이들이 있다면 아이들을 위한 여러 가지 공부모임을 만들어 보고 싶지만 여의치 않다면 할머니들과 함께 하는 공부모임을 가져도 좋겠다고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좋다고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상상만 해도 동화처럼 아름답다는 생각도 했다. 60세 정년이 되어 퇴직하고 나서 연금으로 살림을 꾸려야 하는 시간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시작하면 조금씩 호흡에 곤란을 느꼈지만 말이다. “아이들 다 키워 떠나보내고 둘이 안분지족하며 살다가 한날한시에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대부분의 대화를 대충 마무리 지으려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의 나와는 아직 먼 얘기라는 생각이 들어서기이기도 했지만, 내가 노인이 되기도 전에 삶을 마감하는 상황은 물론이고 나 혼자서 기나긴 노년을 보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여러 가지 가능성까지 고려하기 시작하면 남편과 웃으며 시작한 이야기를 더 이상 웃으며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두려움이 더 깊은 생각하기를 매번 막았던 것 같기도 하다. 몸의 감각도, 탄력도, 그리고 설 자리까지, 나는 물론이고 나를 둘러싼 세계까지 하루같이 달라지는 상황이 서운하던 참이었다. 무엇보다 ‘노년’하면 떠오르는 가난과 질병, 그리고 외로움이라는 변수가 나는 가장 두려웠다.


*** 지하철에서 만난 할머니


  출근길 지하철 안, 나는 대체로 노이즈 캔슬링 상태로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다. 종점에서 지하철을 타는 덕에 출입구 쪽 끄트머리에 앉는 경우가 많다. 두어 정거장을 지나고 나서 일흔에서 여든 정도로 되어 보이는, 키 작고 빼빼마른 할머니 한 분이 옆 자리에 앉았다. 자리가 많아서 그랬는지 두 명은 앉을 법한 면적을 혼자 다 차지하며 자리를 잡았다. 물론 빈 자리는 많았다. 그래도 거슬렸다. 거기다 할머니는 자꾸만 두리번거렸다. 내 좌석 옆 안전 바를 잡고 선 두어 명의 여학생들을 쳐다보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무릎 위 20센티 정도 위로 올라간 짧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나를 쳐다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를 경유한 할머니의 눈빛이 저 여학생들의 옷차림을 단속이라도 하려는 것 같아서 신경이 쓰였다. 그렇지만 할머니들은 대개가 그러니까, 앉은 자리도 시선도 경계 없이 넘나들지언정 결코 누구를 해치지는 않는 그 상황을 참을성 있게 견뎌보기로 했다. 할머니는 이렇게 많은 좌석을 두고도 굳이 다리 아프게 서 있는 아이들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어느덧 지하철이 시내 중심가 어디 쯤에 섰을 때였다. 키가 내 어깨만큼, 그러니까 의자에 앉아있는 내 어깨 정도가 될 만한 아이 하나가 재빨리 뛰어와서 할머니 곁에 엉덩이를 붙이고 자리를 잡았다. 드물게나마 빈 좌석이 보이는 상황이었지만 아이를 따라온 여자 한 명이 굳이 아이 앞 통로 쪽에 손잡이를 잡고 서서 자리를 잡았다. 아이 엄마인 모양이었다. “여기 앉으이소!” 할머니가 앞에 선 여자를 쳐다보며 잠겨있던 목을 뚫고 어색하게 소리를 내었다. “예?” 설마 본인한테 하는 말이냐는 듯이 놀라서 여자가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여기 앉으이소!” “괜찮습니다.” “저는 저 쪽에 가면 되예.” 할머니는 손을 뻗어 경로석을 가리켰다. “정말 괜찮습니다.” “여, 알라 옆에 앉으소!” 여자의 대답도 아랑곳 않고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자 심하게 구부러진 허리가 눈에 쑥 들어왔다. 일어섰는데도 앉은 키와 선 키가 거의 비슷했다. 할머니는 내내 왼쪽 오른쪽 자리를 옮기며 예민하게 간수하던 종이봉지를 집어들더니 뒷짐을 지고 건너편 경로석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버렸다. 이윽고 아이 엄마는 내 옆, 할머니가 앉았던 곳에 아이와 함께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 한지 4개월 정도 되었을 때였다. 그중에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장면을 두 번 정도는 본 것 같다. 세 번인가? 아니 네 번인가? 장담하지는 못하겠다. 매번 노이즈 캔슬링 상태로 이어폰 꽂고 음악을 들으며 책 읽다 보니 주변의 상황을 살피는 일이 드물다. 어쨌든 저렇게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가, 그렇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할머니가, 새파랗게 젊은 아이 엄마에게 자리를 양보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을 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누군가의 도움을 매번 필요로 할 거라고, 혹은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거라고만 생각을 했지, 누군가의 고단함을 예민하게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무료 이미지 제공



***늙어감이라는 대가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에는 노령을 극복한 사람들의 세상이 나온다. 노령을 극복한다는 건 가장 젊고 아름다울 때의 시간만 누린다는 뜻이다. 손상이란 것이 없는 청춘과 번영, 심신이 계속적으로 활동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이 활개하는 세상이다. 이들은 예순이 되어도 능력과 기호가 열일곱 살 때와 다를 바가 없다. 이곳이 바로 우리가 꿈꿔오던 천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소설이 끝내 폭로하고 마는 메시지는 외려 정반대 쪽이다. 젊음과 행복만으로 가득 채워진 사람들은 현재 상황에 너무 만족한 나머지 현상 유지 외에는 그 어떤 변화를 꿈꾸는 것도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멋진 신세계>는 ‘고통이 없는 행복’이 무턱대고 추종되고, ‘장애와 결핍이 가득한 고통’이 무턱대고 적대시되었을 때 한 사람 한 사람의 고유한 삶이 절대 행복이라는 또 다른 기준으로 기계처럼 재단되어버리고야 마는 아이러니를 목도하게 만든다. 

  어떤 결핍과 제약, 그리고 고통에 매몰되지만 않는다면 사람은 그 결핍과 제약, 그리고 고통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나아가게 된다. 그 어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니까 말이다. 우리 아빠는 어릴 때 한쪽 다리를 잃은 대신 손이 아주 섬세하고 예민하게 발달한 사람이 되었다. 장애가 있어도 공장에 가서 일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가난과 질병, 그리고 외로움에 오래 시달린 대신 웬만한 일에도 쉽사리 웃음을 잃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 그것이 유일하게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상처 받은 기억을 잘 잊지 못하는 대신 상처 받는 사람의 마음을 좀 더 예민하게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지하철에서 보았던 할머니에게는 절대 미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할머니는 혼자만 아픈 세상을 견디기 어려워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뭔가를 잃는 것만 같은 이 시간은 끝내 나를 어디론가로 이끌어 갈 것이 분명하다. 그때의 내가 도대체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지 지금 당장 알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호기심을 가득 담아 참을성 있게 기다려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지금의 나로서는 그것 말고 딱히 방법이 없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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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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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min2022-08-14 23:07:21

    정말 좋을때를 보내시고 계시네요.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이니 잘  즐기세요. 평균수명이 훠~~~~~~씬 짧았던 시절에 나온 40대를 가리키는 말이 불혹의 나이라 한다지요....

    지금 기술 수준 만으로도 평균수명 110세까지 산다는데 ... 
    좋은시간 충분히 즐기고...  필요하면 시술 받으세요.. 

    암튼 격하게 공강합니다. 화이팅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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