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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복
  • 김행섭 책임기자
  • 등록 2022-09-21 20: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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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영화 {미녀와 야수}에서 여주인공 벨이 야수의 진심에 마음을 여는 장면에서 펼쳐진 장관이 있다. 그것은 야수가 책을 사랑하는 벨에게 준 선물이었다. 


그 선물은 값비싼 치장거리 같은 것이 아니라 책들이 천장까지 가득 들어찬 “도서관” 이었다.


이 장면을 보며 홀리듯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나도 저런 선물 받고 싶다.’라는 말이었다. 아마 20대였던 내가 단한번도 떠올려본 적 없는 사랑의 방식이 눈앞에서 펼쳐지는데...어쩌면 저건 내가 정말 원하는 건지도 몰라! 라는 자각과 놀라움의 반응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남편을 알고 만나는 과정의 첫 순간, 남편은 뭔가를 무겁도록 팔에 끼고 나타났다. 

살펴보니 여러 권의 책들이었는데, 그것들을 설마 다 나에게 줄까? 싶었는데 내 예측은 빗나갔다. 평소 한두 권의 책을 선물하고 받기도 했지만, 그 몇배의 책을 한꺼번에 나에게 다 주리라고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낯설고도 고마운 경험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우리 만남은 결혼으로 이어졌다.


남편은 다른 욕심은 별로 없는데 책에 관한한 집착에 가까운 욕심쟁이다.

집에 날아드는 택배의 대부분은 남편 이름 000이 수신자로 되어 있고 발신처도 당연히 알00, 예00 등으로 VIP고객이어서인지 각종 사은품도 적지 않다. 가방, 담요, 컵, 노트, 필통, 옷 등등.


초등학교 시절, 방과 후 집에 와서 시간이 날 때면 가장 편안한 자세로 교과서를 들고서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책이 재밌어서 였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고 그저 일종의 놀이였던것 같다.


좀 더 자라서는 소년00이라는 잡지가 유행이어서 친구집에 갔다가 흥미롭게 본 적이 있었는데, 그런 내마음을 알기라도 하시듯 어느날 저녁 아버지가 어린이잡지를 사가지고 오셨다. 그때 울렁거리던 기쁨이 아직도 느껴지는 것 같다. 책을 받자마자 들고 앉아 뚫어져라 읽고 있던 나에게 아버지가 “한 번에 다 읽지 말고 좀 천천히 읽어라~”하시던 말씀이 떠올라 좀 우습기도 하다.


그 시절엔 책도 아껴서 읽어야 했던 세월이었을까...당신이 사온 잡지를 신나서 읽는 딸이 천천히 읽어서 좀 더 오래도록 즐거움을 누렸으면 하는 마음이셨으리라. 그때 아버지의 그 말씀도, 돌아가신 아버지도 그리워진다.


나이차가 컸던 큰오빠도 책을 참 좋아했었다. 

조용해서 오빠가 뭐하나 방안을 들여다보면, 모로 누워 두꺼운 책 속에 빠져서 내가 들어와 보고 있는지도 잘 몰랐다. 

‘도대체 저 속에 무슨 이야기가 있길래? 재미나나봐... 또 책 보고 있네.’ 라는 생각을 마음속으로 했었던 것 같다. 


세월이 흐르면서 책은 나에게 고민상담사 같은 역할도 해주었다. 

쪼르륵 도서관으로 서점으로 달려가 책제목을 훑으며 책을 꺼냈다 넣었다 내 고민의 해답을 찾아 헤매던 숱한 인생의 순간들이 있었다.

아이를 낳아 기를때, 아이에게 주려고 시내에서 동화책을 사서 전철을 타고 집에 가면서 읽었던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도 생각난다. 책을 읽는데 갑자기 솟구치는 내안의 눈물을, 전철안에서 수습하느라고 얼마나 혼이 났었던가.


냄새나고 세상 아무데도 쓸모없던 강아지 똥이 땅의 별 같은 한송이 민들레꽃의 거름이 되어 피어나게 만든 그 대목에서... 나만 아는 나의 부끄럽고 아픈 부분들이 나를 성장시켜줄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전율어린 통찰을 하기도 했었다. 이렇게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를 키워보리라 다짐했었다.


그 뿐이랴...

만학도로 다시 공부를 하던 시절, 상담심리서적들을 읽으며 느꼈던 도전과 희망들은 겁많고 늘 자신감 없던 내가 성장하는데 알찬 영양소들이 되어주었다.


인간과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각과 깊이에 매료되고 감동받으며 이런 새로운 세상을 몰랐더라면 나는 얼마나 답답한 곳에 갇혀 살아갔을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하게 느껴졌었다.


살아오면서 만난 좋은 책들과 보석같은 이야기를 들려준 다정한 글쓴이들, 책을 볼 수 있는 분위기로 나를 담아내 준 분들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여기 이렇게 잘 지내고 있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에 이르니 그 분들의 고마움을 잊어버리고 살아온 것 같아 마음이 아려온다.

더불어 나는 정말 책복이 많은 사람이구나!라는 확신감도 든다.


좋은책을 접할 수 있어, 좋은책이 내 생각과 행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행복하게 살게 된 복을 “책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세상에 이런 복이 있기나 한건가?

아이들이 우리집에 와서 보통 하는 말이 있다. 

“여기 도서관이예요?”

이 말은 집인데 책의 권수와 차지하는 공간이 적지 않아 신기해하는 반응이리라. 

결국 도서관을 선물로 받고 싶어한 나의 바램은 이루어진 것 같다.

덤으로 나도 벨처럼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되었으니, 나의 “책복”은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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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aiby2022-09-22 02:54:25

    책복!
    좋은 책을 접할 수 있어서...
    좋은 책이 내 생각과 행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서...
    행복하게 살게 된 복!

    그럼, 저도 책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발견한 '내게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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