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왜 약자를 두셨을까?>
‘신은 왜 약자를 두셨을까?’
어느 날 불쑥, 이 질문이 내면에서 들렸다.
이 질문은 불순하지 않다. 거북하지도 않다.
이것은 다음 질문을 위한 복선이랄까.
송아지는 태어나자마자 걷는데, 사람은 1년이 걸린다.
사람은 아프면 치료해야 낫는다.
뼈가 부러지면 깁스를 하고 몇 주를 산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시력 청력 기력이 쇠한다.
신은 전지전능하다 했는데, 왜 그냥 두고 보실까?
부모 없는 설움과 사별의 아픔과 나그네의 여정도 두셨다.
왜 이렇게 하셨고 왜 그냥 두고 보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알 수 있을까? 다만, 궁금하다.
‘신은, 사람들이 약자와 어떻게 살기를 바라실까?’
두 번째 질문이다.
불쑥 찾아온 첫 번째 질문을 몇 날 품었더니
그 속에서 두 번째 질문이 나왔다.
(신의 뜻에 따라) 우리 사회에서 약자의 존재가 기정사실이라면,
(신은) 사람들이 약자와 어떻게 살기를 바라실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람이 태어나서 걷는 데에 일 년이나 걸리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갓난아이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너무도 잘 안다.
신은 첫 번째 질문에는 분명하게 답하지 않았지만,
두 번째 질문의 답은 우리 몸과 마음에 이미 새겨두었다.
2023년 1월 10일 화요일
* 오래전 쓴 글을 다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