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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이모사이
  • 편집국
  • 등록 2023-04-27 16:03:31
  • 수정 2023-05-05 20:5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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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영 작가

윽! 딴 집 냄새!”

퇴근해서 집에 들어설 때마다 둘째 딸은 나를 끌어안다 말고 종종 이런 소리를 했다. 그것도 정색을 하고. 내가 그룹홈에서 일한 지 2년 정도가 될 때까지 아이는 매번 이렇게 반응했다. 2박3일씩 다른 공간에서 먹고 자고 하다 보니 그곳의 냄새가 온몸에 배는 모양이었다. “엄마가 돌아올 때마다 다른 집 냄새가 퍼지기는 해.” 대학생이 된 첫째 딸이 덤덤하게 대꾸하는 것에 비해 중학생이던 둘째 딸의 반응은 늘 사나웠다. 며칠 씩 일하고 돌아온 엄마에게 이러기냐고 서운해하기보다는 정말로 바람이라도 피우고 온 사람처럼 머쓱해지곤 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룹홈에서 있었던 이야기는 집에서 절대로 꺼내지 마세요. 나는 하나도 듣고 싶지가 않거든요.”

“난 정말 엄마가 그룹홈에서 일하는 거 싫어하지 않는다니까. 그래도 너무 열심히 하지는 마! 아무래도 엄마는 에너지가 다 닳도록 열심히 할 것 같지만.”

존댓말을 썼다가 반말을 썼다가, 나를 끌어안았다가 떠밀었다가, 사춘기 딸아이의 혼란스러운 감정이 꿀렁꿀렁 요동치며 나를 뒤흔들고 싶어 했다.



“그룹홈에서 아이들이 엄마를 ‘이모’라고 부른다고? 다행이네. 아무도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게 해서는 안 돼. 엄마는 어디까지나 우리 엄마니까.”

그러나 둘째 딸의 걱정과 달리 그룹홈 아이들은 나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심지어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룹홈에 처음으로 ‘입소’를 하게 된 아이들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이모’라고 부르는 데에도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선생님, 아, 아, 이모라고 하려고 했는데…….”

“아니야. 호칭은 네 마음이 괜찮아질 때까지 편하게 써도 좋아.”


여자 그룹홈에서 지내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식사 준비를 도우며 식탁에 숟가락을 놓던 그룹홈의 고등학생 둘째가 눈을 흘기며 끼어 들었다. “뭐야. 우리 이모한테 네가 선생님, 선생님 하는 거 듣기 불편해. 당장 고쳐주면 좋겠어.” 새로 들어온 열여섯 살 아이는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며칠 간 어떤 호칭도 사용하지 않았다.


남편과 두 딸아이는 내가 그룹홈에서 슈퍼스타급 인기를 구가할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여자아이들이 사는 그룹홈에서 2년을 지냈고 출산휴가를 떠난 이모를 대신해 남자아이들이 사는 그룹홈으로 옮기고는 1년을 지냈다. 아이를 꾸지람해야 할 때면, 아이가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대번에 알 수 있다. 나는 여자 그룹홈에서 2년쯤 지내고 나서야 아이가 내 말을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말로는 도저히 설명하기 힘든, 아이와 나 사이에만 존재하는 공기였다. 아니, 그제야 단단한 끈 같은 것이 우리 둘 사이를 묶어준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호락호락한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시간과 비례하는 마음의 크기를, 아이들은 그 무엇으로도 앞지르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그룹홈에서 일을 시작한 첫 해에는 아이들이 밥을 먹는 동안 설거지를 하다가 슬그머니 눈물을 삼켰던 적도 있다. 내가 그래도 집에 가면 얼마나 사랑받는 엄만데, 뭐 이러면서. 생각해 보면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낯선 나를 보고 아이들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할 거라 짐작하는 일은 괴이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관계를 생각보다 쉽게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그룹홈에서 저녁 늦게 아이들이 간식 먹고 내놓은 그릇들을 설거지하던 어느 날이었다. 싱크대에 놓아둔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대학생이 된 큰딸 전화였다. “어, 하연아, 무슨 일이야?” “응, 엄마한테 그냥 한번 전화해 봤어.” “에이~ 진짜로 할 말이 없는데 전화했어?” 그 사이 거실에서 중학생인 둘째가 나에게 무어라 말하는 소리에 수화기를 든 채 말을 받았다. “뭐라고? 내일 아침에 깨워달라고? 몇 시에? 베이컨이 먹고 싶다고?” 순간 수화기 너머 큰딸이 내 목소리를 주의깊게 듣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그 무거운 정적에서 싸한 기운이 전해졌다. 아뿔싸. 집에서는 피곤하다고, 아침 늦게까지 자고 싶다고, 먹는 건 다들 알아서 챙기라고 소리소리 지르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서운한 마음이 든 건가. 배신감 뭐 이런 건가. 몰라. 엄마 일하는데 얘는 왜 전화를 걸어가지고. 사람 정신 빠지게.


아이들을 모두 재워놓고 책상에 앉아 하루 종일 미뤄둔 행정업무를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아니, 큰딸한테 다시 전화를 해볼까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이모!” 똑똑똑, 자는 줄만 알았던 막내가 방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이야?” “이모, 저 이빨이 빠졌어요.” 문을 열자 막내가 검지와 엄지 사이에 빠진 이를 집어 들고 코앞에 내밀었다. 이가 빠진 자리를 “이~” 하고 내밀어 보이기까지 했다. 아래쪽 어금니였다. “우와” 하고 아이에게 탄성을 질러줄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뚜렷이 자각하면서 아이를 쳐다보았던 것 같다. 하루 종일 미뤄두었던 그 어떤 서류 업무들보다 집중해야 할 순간이었다. “밑에 새 이가 나고 있구나. 아프지는 않아?” 깨끗한 거즈를 뭉쳐서 피가 채 마르지 않은 잇몸 위에 얹어주었다. “꽉 물어봐. 옳지. 옥상에 올라가서 빠진 이를 지붕 위로 던져볼까?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 하고 노래도 부르자.” “아니요. 제가 그냥 가지고 있을래요.” 막내가 눈을 반달 모양으로 만들어 씨익 미소를 짓더니 이를 싼 휴지 뭉치를 손에 쥐고 방으로 돌아갔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아이와 나만이 간직한 고요한 기억, 머리를 쓰다듬을 때의 그 감촉, 씨익 웃으며 마주치는 눈빛, 말할 수 없는 감정의 휩싸임 같은 것들이 주는 행복과 경이로움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집과 일터, 경계가 모호한 그 사이를 오가는 그룹홈 이모는 보통의 부모가 경험하지 않아도 될 고민도 많다. 정성스럽게 밥을 짓는다던가, 집중해서 대화를 나눈다던가, 문제행동 앞에서 아이가 스스로 동기부여할 때까지 가슴 쓸어내리며 기다리던 일상의 경험만 가지고는 버틸 수 없는 고민들이다. 엄마를 독차지하고 싶어하는 아이들 못지않게 분리와 상실을 경험한 아이들의 특수한 필요와 욕구를 매번 새로 알아가며 버텨야 한다. 그룹홈에 오기 전까지 통과했을 그 아프고 괴로운 과거까지도 모조리 톺아가면서. 아이를 낳고도 지금껏 엄마의 자리가 무엇인가 헤매는 것 못지않게, 그룹홈 이모의 자리가 무엇인가 오늘도 헤매고 버텨나간다. 아이들과 내가 만드는 두 개의 가정은 여기가 우리 가정이라는 나의 선언 못지않게, 이곳을 함께 지켜내는 시간들이 만들어줄 것이라 믿는다. 엄마와 이모 사이를 오가는 밤이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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