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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오고 가는 관계
  • 편집국
  • 등록 2023-05-31 11:21:32
  • 수정 2023-05-31 11: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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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6 서은혜 동문의 글

누군가의 마음을 받는다는 것. 나도 모르게 그 누군가에게로 마음이 달려간다는 것. 그것은 가끔씩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놓기도 한다.


밥을 짓거나 메일을 회신하는 간단한 일이 버거워서 멍해지는 며칠을 보내고 있었다. 나이를 먹는지 몸이 자꾸만 늘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해야 할 일들을 겨우 겨우 쳐내고 나면 정작 하고 싶었던 일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상에 화가 났는데 말이다. 이제는 해야할 일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내가 싫어지려고 했다.


언젠가 누가 물었다. 이렇게 바쁜데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냐고. 그래서 대답했다. 언제든 시간이 난 적은 없다고. 그냥 시간을 만들 뿐이라고. 잠을 줄여서라도 책 읽을 시간을 만드는 거라고. 대답을 들은 이가 입을 헤 벌렸다. 그때 일을 떠올리면서 나도 같이 입을 헤 벌리게 되었다.  열의에 차서 단호하게 답을 하던 내가 지금의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닌 것만 같아서.


이런 나를 보기 위해서 어제는 누군가가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왔다. 그래서 놀았다. 이들만 생각하면서 놀았다. 몇 시간씩. 마흔이 넘고부터 웃을 때마다 눈 옆에 주름이 잔뜩 잡히게 된 그 얼굴로 커피숍을 울리며 마구 웃었다. 심지어는 바보 같은 목소리를 내면서 남편을 흉 보기도 하고 옆에 사람 의식도 않고 박수를 치면서 키득거렸다. 약속을 잡은 이후로 그이를 만나면 이런 이야기도 나누고 저런 이야기도 나누어야지 하고 잔뜩 별러 왔더랬다. 정작 그이가 가고 나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절반도 못 나눈 것만 같아서 자꾸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애처럼.


먼 길을 달려와준 이들을 다시 떠올렸다. 그이는 가고 없지만 함께 했던 기억이 내 안에 남아서 온도가 되었다. 20분 뒤에는 또 그룹홈으로 나서서 내일 저녁이나 되어야 집에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이에게 받은 그 마음이, 그 뜨끈한 마음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흘러가게 되는가 지켜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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