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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 선택존중, 취향존중
  • 편집국
  • 등록 2024-01-16 0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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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한 모금의 담배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친구만 있다면 

더 바라는 것이 없는 3년 차 프로 가사도우미 ‘미소’. 

새해가 되자 집세도 오르고 담배와 위스키 가격마저 올랐지만 일당은 여전히 그대로다. 

좋아하는 것들이 비싸지는 세상에서 포기한 건 단 하나, 바로 ‘집’.

<소공녀> 공식 영화 소개



주인은 선택하는 사람

몇몇 년 전 복지관에서 어버이날 행사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버이날의 주인은 누구인가?’ 어린이날이 되면 아이들이 원하는 장난감을 사주거나 하고 싶은 것을 함께 합니다. 어린이날의 주인은 어린이니까요. 그렇다면 어버이날의 주인인 어르신은 어버이날에 원하는 것을 하고 계실까요?


보통 어버이날은 어르신을 섬기는 날이라 생각합니다. 카네이션 달아드리고 평소보다 맛있는 음식을 대접합니다. 사진을 찍어 인화해드리기도 해요. 그 과정에 어르신은 그저 받는 사람이 됩니다. 지금까지 어버이날의 주인인 어르신에게 선택이라는 주인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빼앗은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어르신 몇 분을 모시고 하고 싶은 것을 여쭈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느 어르신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근데 니들 복지관은 왜 영화를 꼭 3시나 4시에 보자는 거야?” 무슨 말씀인지 물으니 “밥 먹고 커피 한잔하면 12시 반쯤 돼. 그때 집에 가거든. 근데 3시, 4시면 나오기가 귀찮아. 1시에 영화 보면 좋겠어. 영화 보고 집에 가게.”


어르신 말씀에 크게 한 대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어버이날의 주인인 어르신께 영화 보는 시간도 여쭈어본 적이 없구나. 복지관에서 왜 3시나 4시에 영화를 보느냐는 말씀에는 ‘왜 주인인 나한테 묻지도 않고’가 생략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작은 것부터 묻지를 않으니 주인답게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왜 묻지 않았을까. 조금 생각해보면 이해도 됩니다. 어버이날 특식 행사를 하고 정리하면 아무리 빨라도 3시에나 영화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거든요. 자연스럽게 3시나 4시에 영화를 보게 된 것이죠. 하지만 핵심을 어르신이 주인 되는 날로 생각하면 어르신께 하나하나 여쭤보는 게 당연하게 됩니다. 그 해부터 저희 복지관은 매년 어버이날 영화를 1시에 보고 있습니다.



선택 존중을 넘어 취향 존중으로

영화 소개에 나오듯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에게 위스키, 담배, 남자친구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미소는 그 세 가지를 놓칠 수 없어서 방을 빼고 친구 집들을 전전하지요.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다른 것을 포기할지언정 집이 먼저니까요. 하지만 미소 삶의 주인은 미소 자신입니다. 자기 취향에 따른 선택의 열매나 고통도 오롯이 미소의 몫입니다.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철없다고 핀잔하는 친구에게 미소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당사자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몰라요. “나이는 들었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형편은 어려워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미소의 대답은 사회사업가에게 당사자 생각을 들어드리고 취향을 존중하라는 항변으로 들렸습니다. 이는 선택을 넘어 취향을 존중하는 거기까지 가라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어버이날을 기획할 때 영화 보기 의견이 나오기 전에 한 어르신이 다른 의견을 먼저 내셨습니다. 강당에 조명을 모두 끄고 커튼을 쳐서 어둡게 한 뒤, 미러볼 조명이 돌아가면서 큰 소리로 음악이 나오는 고고장을 만들어 달라고 하셨지요. 어르신 의견에 저와 다른 어르신 모두 당황했습니다. 다른 어르신들이 금세 정신을 차려서 영화를 보자고 하셨고 그 어르신도 동의하셨습니다. 


영화를 보고 싶은 분도 계시고, 고고장에서 춤을 추고 싶은 분도 계시지요. 선택 존중은 일종의 객관식으로 기본적으로 선택지가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존중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지요. 하지만 취향 존중은 주관식입니다. 어떻게 취향을 살려 드리고 존중할 수 있을까요? 만약 내가 만나는 당사자가 미소처럼 당장 살 집보다 위스키, 담배를 더 중시하는 취향이라면 그것까지 존중할 수 있을까요? 


대종상영화상,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등. 전고운 감독은 영화 <소공녀>로 2018년 많은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받았습니다. 시대가 전고운 감독과 <소공녀> 미소의 취향을 존중한 셈이죠. 

선택 존중을 넘어 취향 존중의 시대입니다.


[출처] <소공녀> 선택 존중, 취향 존중|작성자 빈손 김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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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aiby2024-01-18 10:46:25

    ^^
    이 영화보면서 제가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저도 많이 공감하던 대사였기에..
    실천현장으로 가져오지는 못했었는데...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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