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 한강이 써낸 작품 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책. 작가 특유의 치밀하고 날카로운 문체로 표현된 5·18의 참상과 시대 연대자들의 신념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소년이 온다』는 내게 묵직한 문학적 울림과 동시에 깊은 역사적 성찰을 하게 한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이 독후감을 쓰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느 하나 가볍게 다룰 수 없었기에, 생각이 많았다. 이 작품을 더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싶어 거의 내용을 외울 정도로 수차례 읽은 책을 또다시 읽고, 관련 기사와 인터뷰도 찾아봤다. 긴 고민의 결과, 인상 깊은 구절 몇 개를 인용하여 이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부디 이 글을 읽을 여러분들에게도 소년이 오기를 바란다.
중학교 3학년인 주인공 동호는 시신의 신원을 기록하는 자원봉사를 했다. 16살의 동호는 궁금한 것이 많았다. 소년은 병동에서 시신을 수습하던 중에,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라며 의문을 표했다. 당시 신군부 세력에 맞서 극렬분자, 심지어 반역자로 내몰려 국가에 살해당한 시민들에게 국가적 애도를 표하는 것을 동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또, ‘죽을 거 같으면, 도청을 비우고 다 같이 피해버리면 되잖아요. 왜 누군 가고 누군 남아요.’라고 말하며, 왜 시민군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도청을 지키는지에 대해 궁금해했다. 예견된 죽음을 각오하고 불의에 저항하는 것은 보통의 마음가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년 역시 도청에 머무르기를 고집하며 그들의 각오에 공감하고, 연대했다.
연대한 이들은 그 이유만으로 악랄한 처우를 받게 되었다. ‘그들이 마련한 각본에 우리들의 이름으로 빈칸을 채울 수 있도록,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거짓 자백뿐이었습니다.’ 시위 탄압의 명분을 위해 그들은 자신이 짓지도 않은 죄를 고해야만 했다. ‘각진 각목이 어깻죽지와 등허리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자신의 곧은 물성대로 활짝 펴지며 내 몸을 비틀 때, 제발, 그만, 잘못했습니다, 헐떡이는 일초와 일초 사이, 손톱과 발톱 속으로 그들이 송곳을 꽂아넣을 때, 숨, 들이쉬고, 뱉고, 제발, 그만, 잘못했습니다, 신음, 일초와 일초 사이, 다시 비명, 몸이 사라져주기를, 지금 제발, 지금 내 몸이 지워지기를’ 옥에 들어가 그들은 부당한 폭력을 감내해야 했다. 대체 왜? 제5공화국의 근엄한 법도 아래 감히 민주주의를 울부짖어서?
부당한 폭력에 맞서 목소리를 낸 시민 중 ‘생존자’들은 민주주의가 도래한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자신조차 우리를 경멸했습니다. 우리들의 몸속에 그 여름의 조사실이 있었습니다. 검정색 모나미 볼펜이 있었습니다. 하얗게 드러난 손가락뼈가 있었습니다.’ 생존자들의 가슴 속엔 5월 18일의 상흔이 남아있었다. ‘그 여름 이전으로 돌아갈 길은 끊어졌다. 학살 이전, 고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그들의 혼은 그해 여름에 머물러 있었고, 그래서 그들은 어딘가 망가진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지인의 죽음을, 우리의 죽음을, 광주의 죽음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해 고통 속에 여생을 살았다.
따라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저항을, 그들의 신념을, 그들의 피를, 그들의 여름을, 그들의 5월 18일을. 그들의 죽음이 없었다면 6·10 민주 항쟁도 없었을 것이며, 지금의 우리도, 지금의 세상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세계 곳곳엔 1980년 광주의 여름이 있다. 민주화를 외치는 이들의 영혼이 독재 정권 아래 바스러지고 있다. 이 글을 봐주신 여러분들 모두가 『소년이 온다』를 읽고, 올해로 제41주년이 되는 그해의 광주와 시대 참여자들에 대해 생각하고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기억을 토대로 부정의 한 역사적 흐름을 거부하고 맞서는 모든 이들에게 연대해주기를 바란다. 소년아, 와라. 그리고 이제는 같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