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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림아 나와라!
  • 편집국
  • 등록 2021-05-18 16: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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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6 서은혜

<성림아 나와라>


1. 소득조사


국민학교 삼학년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담임 선생님이 묻는 말에 해당하는 사람은 손을 번쩍 들라고 했다. 그러고는 부모님이 한 달에 백만 원 버는 사람 손들어라, 백오십만 원 버는 사람 손들어라, 했다. 그러자 몇몇 아이들이 진짜로 손을 들었다. 손을 들라고 했지, 코를 들라고 했나, 손을 들다 말고 곁눈으로 반 아이들을 훑어보는 경애의 옆모습이 보이는 순간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36색 크레파스를 들고 다닌다고 뻐길 줄이나 알지, 그림도 못 그리는 게, 싶었다. 우리 아빠가 그래도 공장에 다닐 때는 한 달에 이십만 원씩 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듣기는 했는데, 선생님이 부르는 금액에는 도저히 다다를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선생님이 수업 받는 아이들에게 대놓고 이런 걸 물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선생님은 짤막하게 다듬은 교편을 한 손에 잡고 다른 손바닥 위로 톡톡 치면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애로운 표정이든 일촉즉발의 표정이든 언제나 선생님의 손에는 그 교편이 들려있었는데, 자애 쪽에서 폭발 쪽으로의 이동은 늘 순식간이었다. 대들고 싶다는 생각은 함부로 꺼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머리든 엉덩이든 손이든 닥치는 대로 휘두르고 때렸다. 


어느 순간 돈이 자꾸만 올라가서 한 달에 삼백만 원 버는 사람,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웬 약국집 아이가 쑥스러운 듯이 손을 들었던 게 기억난다. 아이들이 막 놀라서 “우와”하고 소리를 질렀다. 약사가 되면 저렇게 돈을 잘 벌 수 있냐고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은 아직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손을 안 든 많은 아이 중의 한 명, 혜진이를 꼭 짚어서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너거 아부지는 얼마 버시노?” 아빠가 이비인후과 의사인 혜진이는 하루에 이십만 원을 번다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조사를 마쳤다.


단짝친구 성림이가 학교를 빠지지 않는 날이면 늘 그 아이와 함께 걸어서 집으로 왔다. 그날은 성림이가 학교에 나온 날이었다. 성림이는 혜진이 아빠보다도 자기 엄마가 돈을 훨씬 더 잘 번다고 했다. 손을 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었다. 목욕탕 카운터에도 탕 안에도 얼굴을 내비치는 법이 없어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사실 동네사람들이 다 다니는 그 용궁목욕탕은 자기 엄마가 만든 것이며, 목욕탕 하나만으로도 하루에 기본 백만 원씩은 번다고 했다. 그것 말고도 일본이며 어디며 사업하는 게 많아서 엄마가 얼마를 버는지 제대로 헤아리는 것은 아주 어려울 것이라고도 했다.


그랬다. 생각해보니 내가 아는 아이 중에 성림이네 집이 가장 좋았다. 혜진이는 ‘맨숀’에 살았지만, 성림이는 큰 개가 멍멍 짖고 초인종이 달린 커다란 나무 대문에, 연못과 정원이 근사한 집에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림이가 그날 손을 들고 자기 엄마가 최고 부자라고 말을 꺼냈더라면 담임 선생님은 아마 대놓고 코웃음을 쳤을지도 몰랐다. 목욕탕 사장 아줌마는 성림이의 진짜 엄마가 아니었고, 몇 백 평이나 된다는 그 집은 성림이의 집이 아니었다. 성림이는 그 집의 식모였다.


2. 식모


1960년대나 70년대만 해도 도시에는 식모가 많았다. 한 입이라도 줄여야 하던 시절, 학력이 낮고 특별한 기술이 없는 10대 여성들이 도시에서 식모살이해 번 돈으로 가족들의 살림을 보태는 일은 그야말로 여사였다. 60~70년대 신문에는 '식모 쓰는 돈을 아껴 아이들 간식비로 쓰자' 같은 기사나 칼럼이 수시로 실릴 정도였다고 한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공장을 비롯해 10대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가 늘어났고 교육수준 또한 높아지면서 식모를 하겠다는 사람은 점차 없어지게 되었다. 박완서의 단편소설 <그리움을 위하여>를 보면 남의 집 식모를 빼내오려다가 대판 싸움이 일어나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당시에 식모 구하기가 그만큼이나 어려웠던 모양이다. 10대 여자아이가 대부분을 차지하던 식모가 서서히 사라지면서, 평균 나이대가 45세가 되는 파출부라는 단어가 생기게 되었다. 먹고 자는 것 말고 제대로 된 임금을 받으며 일을 하는 일자리였다.*


그러고보니 혜진이네 맨숀에도 부엌 한 켠에 자그마한 ‘식모방’이 하나 있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이모’가 그 방에 상주하면서 집안일을 하고 혜진이 형제들을 보살펴주고는 했다. 이모는 혜진이 엄마와 친자매지간이라고 했고, 늘 멋진 차림에 고상한 취미활동을 하고 다녀서 동네 사람 누구도 함부로 하는 사람이 없었다. 약국을 하는 건희네 집에는 월급을 받으며 아침저녁으로 출퇴근을 하는 파출부 ‘아줌마’가 있었다. 건희네 식구 모두가 솜씨 좋고 성실한 그 아줌마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대우를 해서, 나조차도 그분에게 늘 예의를 다하고는 했던 기억이 있다. 


아시안게임을 개최한다고 한창 시끄럽던 1986년, 대구였다. ‘식모’라는 단어가 참 애매하게 통용되던 시기였다. 누구도 본인을 식모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누군가를 설명할 때 뒤에서 공공연히 쓰고는 하던 단어였다. 세상이 변하면서 일종의 멸칭이 되어버렸는데, 그것이 던지는 모욕에 대해서는 모두가 함구해 버리는 그런 단어이기도 했다. 성림이의 입장이 딱 그랬다. 목욕탕 사장 아줌마는 성림이를 고아원에서 데리고 왔다고 했고, 성림이는 그 아줌마를 “엄마”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본인은 ‘양녀’라고 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모두 성림이를 ‘식모’로 부리려고 고아원에서 데려온 아이라고 했다. 


우리 동네에서 밥을 하느라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이는 성림이 뿐이었다. 우리 동네에서 ‘자식’이 아닌 아이도 성림이 뿐이었다. 


3. 학교를 못 가는 아이


학교를 나오는 일이 없는 성림이와 단짝이 된 것은 노상 몽둥이나 들고 짜증을 부리던 담임 선생님 때문이었다. 그는 학기초에 나만 따로 불러서 당부를 했다. 성림이가 제멋대로 학교를 빠지고 있으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매일 시간에 맞춰 학교로 데리고 나오라고 말이다. 혹여 그 집 어른을 보거들랑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나라에서 잡아간다는 이야기도 꼭 전하라고도 했다. 본인은 지금 암에 걸려서 힘이 없으니 지척에 사는 내가 성림이를 꼭 학교로 데리고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성림이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매일 아침, 대궐 같은 그 집 대문 앞에 서서 목이 터져라 성림이를 불렀다. 통상은 대문 앞에 서서 두세 번 이름을 부르면 아이들이 나오게 되어있는데, 이 집은 누구도 나오는 법이 없었다. 벨을 누르면 집안에 사는 사람이 대답을 한다는 최신식 인터폰을 눌러도 마찬가지였다. 잠을 깨지 못한 것일까, 잠시 집을 비운 것일까, 시간을 두고 다시 부르면 나오지 않을까, 대답 없는 대문 앞에 서서 별별 궁리를 다 해보았다. 성림이를 학교로 데려가겠다는 목표에 몰두하면 할수록, 제 시간에 맞춰 학교로 가는 일은 더욱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매일 아침, 담임 선생님은 인상을 쓰고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성림이도 두고 온 주제에, 지각까지 하는 것을 보니, 책임감이 부족한 아이라고 했다. 손바닥을 내라고 해놓고 오금이 저리도록 마구 때리기도 했다. 악에 받쳤다. 어린 마음에도 선생의 요구는 말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제는 선생님이 나를 때리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오기가 생겼다. 


그 집을 뒤집어버릴 참이었다. 너 없으면 나는 또 선생님께 혼이 난다며 숨이 넘어가도록 울부짖는 소리를 내었다. 성림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여기 사는 어른을 나라에서 잡아다가 몽땅 감빵에 보내버릴 거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이 듣지 않는다면 동네방네 망신이라도 당해서 어찌 되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드디어 대문이 열렸다. 성림이였다. 내가 벌인 난리 때문에 성림이가 혹여 나를 싫어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조금 되었지만, 성림이의 표정을 보고나서 마음을 놓게 되었다. 


“니 소리 전부 다 듣고 있었다. 미안하데이. 내일은 니캉 꼭 같이 학교에 가께. 그러니까 니는 지금 빨리 학교로 뛰어가라. 안그라믄 또 지각할끼다.”


4. 목욕탕 사장 아줌마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몇 겹의 잠금장치가 된 대문을 열고 드디어 목욕탕 사장 아줌마가 모습을 드러낸 날이었다. 말을 하는 한 마리의 호랑이 같다는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우리 성림이 찾았나? 학교 선생님이 니를 여기로 보냈다꼬? 안 데리고 오면 니가 맞는다꼬? 니 어데 사노? 니 이름이 뭐꼬?”


동네 아줌마들은 목욕탕 사장 아줌마를 ‘그 여자’라고 했다. 그 여자는 혼자 살아도 아무도 갋을 수 없을 만큼 무서운 사람이라고 했다. 누가 길에 버린 분유깡통을 주워다가 요강 단지로 쓸 정도로 지독한 구두쇠라고도 했고, 요정골목에서 엄청난 기생이었다고도 했고, 한국 일본 할 것 없이 부자 영감들 홀려서 번 돈으로 엄청나게 부자가 된 사람이라고도 했다. 


젊었을 적에는 정말로 고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기름을 바른 것처럼 광이 나는 피부도 피부지만, 이목구미가 참 뚜렷했다. 체격은 탤런트 김을동씨 만큼 늠름했고, 잔머리 하나 없이 봉긋하게 뒤로 넘긴 올림머리를 보고 있으면 기모노를 입은 일본 여자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 속마음까지 샅샅이 뒤져 살피는 듯한 저 눈빛 하며, 터지기 직전의 고함소리를 억지로 참는 듯한 목소리까지 듣고 있다보면 마음이 자꾸만 조마조마해졌다.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나서 와르르 달려서 도망가는 장난을 칠 때처럼, 마구 뛰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책가방을 매고 아줌마 뒤에 서서 나를 기다리는 성림이와 눈이 마주치고 나서는 아줌마와의 대화를 제법 의젓하게 마칠 수가 있었다. 담임선생은 물론이고 동네사람 누구도 상대할 수 없다던 목욕탕 사장 아줌마와 독대를 마치고, 나는 그날 성림이와 함께 학교로 갔다.


5. 미경이 언니


대궐 같은 집에는 목욕탕 사장 아줌마와 성림이 말고도 한 명이 더 살았다. 미경이 언니였다. 미경이 언니 역시 목욕탕 사장 아줌마가 식모로 쓰려고 어디서 데려왔다는 모양이었다. 성림이와 학교를 다녀오고 나서 성림이 집안에도 몇 번씩 몰래몰래 드나들게 되었을 즈음이었다. 시집을 가도 될 만큼 덩치가 크고 나이가 많았던 그 언니는, 내가 올 때마다 자꾸만 나타나서 곁에 붙어 앉으려 했다. 


둘이서 인형을 한 개씩 나눠 잡고 뭐라고 뭐라고 이야기를 지어내는 식으로 인형놀이를 하고 있는데, 코앞에 오도카니 앉아 그것을 지켜보는 미경이 언니를 볼 때마다 울화통이 치밀었다. 뿐만 아니었다. 엄마가 이러면 혼낼 거라고 성림이에게 귀엣말을 하면서, 자꾸만 끼어들고 싶어 안달이었다. 우리가 얼마나 어렵게 만났는데 그걸 방해하는가 싶어, 언니가 좀 사라졌으면 싶었다. 그렇지만 미경이 언니의 이런 행동이 나이에 맞지 않는 것처럼 여겨져서 한편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목욕탕 사장 아줌마가 미경이 언니 역시 학교를 못 다니게 했기 때문에 친구를 사귀지 못해서 그런가 싶어 자꾸만 언니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화가 났다가 안쓰럽다가 하는 복잡한 마음을 어찌할 줄을 몰라서, 언니를 볼 때마다 억지로 웃고는 했다. 그러고 나면 언니가 자꾸만 더 달라붙는 것 같아서 한숨이 나왔지만 말이다.


늘 혼자인 것 같은 미경이 언니에게도 들러붙던 사람이 하나 있기는 있었다. 용궁목욕탕 보일러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미경이 언니를 볼 때마다 붙어 서서 뭐라고 말을 걸고 자꾸만 웃었다. 목욕탕 뒤쪽 골목 후미진 곳에는 쇠문이 달린 보일러실이 따로 있었다. 보일러 아저씨는 그곳에서 일하다가 나와서 타올 하나 목에 두른 채 골목 어귀에 쪼그려 앉아 땀을 닦거나 담배를 피고는 했다. 아저씨의 부인도 그 목욕탕에서 세신사로 일했다. 수증기가 뿌연 탕 안에서도 사람들이 바로 부를 수 있게 아줌마는 늘 까만색 아니면 빨간색 팬티를 입고 다녔다. 얼마 전에는 아줌마가 시커먼 피를 너무 흘려서 애기들에게나 채우는 기저귀를 차고 일한다는 얘기도 얼핏 들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아저씨는 보일러실 구석으로 미경이 언니를 불러다가 뭐라고 자꾸만 시시덕거렸다.


그날은 아저씨가 술이 많이 취한 날이었다. 남들 몰래 목욕탕 뒤 으슥한 보일러실 안에서만 하던 그 짓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서 하자고 난리였다. 벌겋게 술이 오른 얼굴로 비틀거리다가 목욕탕에 심부름 하러 들른 언니를 발견한 것이었다. 한번만 만져보자고 하면서 언니를 붙들고 가슴을 마구 주물거리고 킬킬거렸다. 보일러 아저씨가 웃을 때마다 목에서 가래 들끓는 소리가 났다.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소리를 질러서 사람들을 불러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움을 요청할 사람들을 찾기 위해 아저씨에게서 눈을 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길목이라 사람이 많았다. 안 보는 척 하면서 이곳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 한심하다고 혀를 차는 사람, 대놓고 구경을 하는 사람, 너무 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 중에 아저씨를 말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언니를 빼내야만 했다. 돌을 집어 들었다. 아저씨 머리라도 때려야겠다고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그 순간, 언니가 크큭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가나초콜릿 하나를 받아들고 아저씨한테 호응이라도 하듯 어설프게 자꾸만 크큭거렸다. 던지려던 돌을 꼬옥 쥐고 그만 그곳을 떠나버렸다.


지금에 와서 미경이 언니가 크큭거리던 장면을 한번씩 떠올리고는 한다.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사람이 너무 당황스럽고 치욕스러운 행동을 하는데, 그걸 지켜보고 있는 저 많은 사람 중에 편들어 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어색하게 크큭거리던 언니를 가끔 생각하고는 한다. 그렇게 해도 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데, 그때 우리 동네에서, 미경이 언니는, 아마 그렇게 해도 되는 사람쯤 되었던 것 같다.


6. 성림이


성림이는 학교 가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내가 대문 앞에서 그렇게 패악을 부렸는데도 나를 이토록 좋아하는 것을 보면 순전히 학교를 갈 수 있게 되어서 그런 것 같았다. 아이들을 마구 패다가 부러져버린 방망이를 다시 짤막하게 다듬어서 들고 다니는, 늘 신경질이 나 있는 그 담임 선생님마저도, 자기는 제일로 좋다고 했다. 지각한다고 패든, 준비물을 안 가져온다고 패든, 숙제를 안 했다고 패든, 어찌됐건 자기가 학교에 오나 안 오나 관심을 가져준 유일한 선생님이라고 했다. 엄마라는 사람과 매일 아침 사투를 벌인 건 나였는데 정작 성림이는 담임 선생님이 그렇게 고맙다고 해서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학교 출석일의 절반 정도를 목욕탕 사장 아줌마에게 빼먹히면서도 성림이는 수업을 곧잘 따라왔다. 한번 들으면 잊는 법이 없었다. 숙제를 하다가도 모르는 게 있으면 목욕탕 사장 아줌마가 보낸 심부름길에 우리집을 잠깐 들러서 배워 가고는 했다. 어떤 식이든 책과 연필을 놓치지 않는 법을 찾아내었다. 이토록 영리한 머리 때문에 아줌마가 성림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꽉 붙들어두는 게 분명했다. 


성림이의 별명은 고릴라였다. 성림이의 외모와 체격 때문에 붙은 별명이었다. 남자아이들이 놀리듯이 붙인 별명이었지만, 진짜 고릴라처럼 주먹을 쥐고 가슴을 퉁퉁 쳐가며 콧구멍을 벌름벌름 하는 시늉이 어찌나 우습던지, 그런 성림이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꽤 많았던 기억이 있다. 사실 웃기기만 했더라면 그만큼 사랑 받는 고릴라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몸이 아프거나 어린 아이가 억울하게 당하고 있는 장면을, 고릴라는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전교생이 죄다 두려워하는 망나니 같은 아이들이 주먹을 몇 대씩이나 날려서 시뻘겋게 익어 오를지언정 다른 아이들처럼 절대 우는 법도, 물러나는 법도 없었다. 어떤 상황이 되든 고릴라는 그 아이를 구해내었다. 내가 곁에서 본 싸움만 해도 다섯 건은 너끈히 넘을 것이다. 학교도 못 나오고 공부도 못 한다는 성림이를 도와주고 지켜주려고 시작한 관계였는데, 어느 순간 나 역시도 성림이에게 친동생 못지않은 보살핌을 받게 되었다.


고릴라처럼 힘이 센 성림이가 마냥 기특하던 어느 날,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성림이가 유독 체격이 좋고 힘이 센 건, 발육이 남달라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 아이는 또래보다도 나이가 세 살이 많다고 했다. 학교 갈 때가 삼 년이 지나도록 법망을 피해보려고 목욕탕 사장 아줌마가 수를 쓴 결과였다. 평생 학교도 가지 못하고 시키는 일만 하다가 누가 맺어준 사람에게 시집 보내지는 식모의 삶이라는 것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모양이었다.


7. 쉽지 않은 등교


가만히 생각해보면 매일마다 성림이 집을 들르지는 않았다. 어떻게 해도 늦을 것 같은 날이면 성림이를 놔두고 그냥 혼자서 학교로 뛰었다. 성림이를 데려가느라 날마다 꾸지람을 들어야 하는 내 처지가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 방을 닦다가 내 얘기를 듣던 고모가 성림이를 데리고 학교 가는 고생일랑 이제 그만두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걸레를 집어던지던 순간이 기억난다. 정말 그러고 싶었다. 성림이의 손을 잡고 학교로 갈 때만큼 기쁜 시간도 없었지만, 아침마다 목욕탕 사장 아줌마와 일전을 벌이고 담임 선생님의 꾸지람까지 들어가며 성림이를 챙겨야 하는 내 상황이 버겁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던 시간 역시 부정할 수는 없었다.


목욕탕 사장 아줌마는 성림이를 곱게 보내주는 법이 별로 없었다. 성림이가 아침마다 꼭 해야하는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 중에서도 준비물을 사가야 하는 날은 그야말로 한 판 씨름을 벌여야만 했는데,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버린 성림이가 잔뜩 미안한 표정을 하고 대문을 열어줄 때까지 길바닥에 서서 버티고는 했지만, 성림이는 끝내 나오지를 못했다. 학교 갈 시간은 한참이 지났고 같이 갈 친구마저 놓쳐버렸다. 


어제 담임 선생님이 가져오라고 한 준비물을 사려면 오백원이 필요했을 것이고, 성림이는 학교로 나오기 전에 그 돈 오백원이 필요하다는 말을 꺼내다가 끝내 매타작을 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여간 때리지 않고서야 자존심 세고 힘도 센 성림이가 그렇게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지는 않았을 것이다. 학교만 오면 좋다고 입이 째지도록 웃던 성림이를 놔두고 혼자만 빠져나온 내가 한심했다. 


모두 학교로 가고 횅한 길을 혼자서 뛰는데 마음이 마구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이 와중에도 너무 늦지 않으려면 더 빨리 달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조금 우습기도 했다. 그렇게 어찌어찌 달리다보면 목구멍에서 피 냄새 같은 게 올라왔는데 성림이네 집 대문 앞에서 풍기는 비릿한 냄새랑 섞여서 구역질이 날 때도 있었다. 성림이네 집은 사찰에서나 맡을 수 있는 향냄새가 가득 배어있었다. 그런데 그 냄새가 대문 앞에 묶어놓은 개 비린내와 섞여서 형용하기 힘든 냄새를 만들고는 했다. 누가 지나가기만 해도 쇠사슬 목걸이를 쩔렁거리며 컹컹 짖던 큰 개, 식은 밥과 찌개 건더기와 생선가시가 수북하게 쌓여 있던 개밥그릇, 왱왱거리던 똥파리, 그리고 지독한 향 냄새. 마구 섞여서 지독해져버린 그 비린내가 꼭 목욕탕 사장 아줌마 같았다. 절을 몇 개씩이나 짓고 불상을 모시고 공양을 드린다는 아줌마에게 딱 어울리는 냄새라고 생각했다. 아줌마가 가장 무서워할 저주를 퍼붓고 싶었다. “지옥에나 떨어져라!” 


하루는 성림이에게 물었다. 목욕탕 하나만 해도 하루에 백만원은 그냥 번다면서, 너네 엄마는 왜 오백원짜리 준비물 하나도 사줄 수가 없는지 말이다. 성림이가 대답했다. 돈이 너무 많아서 백 원짜리, 천 원짜리 같은 건 집 안에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8. 남들 다가는 등굣길


“그날 선생님한테 안 맞았나? 엄청 지각했을 건데. 혼자 뛰어간다고 서글펐제? 니한테는 진짜 미안하다. 미경이 언니가 자꾸 엄마한테 뭘 일러바친다. 그것도 꼭 학교 가기 전에. 그래서 엄마가 빗자루를 들고 막, 나를 아예 학교도 못 하게 하드라. 너무 억울한데 말대답도 못하게 한다. 아무튼 내가 참 미안하데이.”


내가 기억하는 성림이의 유일한 해명이다. 성림이는 결석한 날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법이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꼭 알고 싶었다. 십 분이고 이십 분이고 대문 앞에서 성림이만 나오기를 기다리던 그날, 대문 밖으로 머리만 빼꼼히 내민 성림이가 울음을 꽉 잠근 채 나를 돌려보내던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나는 꼭 알아야만 할 것 같았다. 빗자루를 든 아줌마가 성림이를 도대체 어떻게 때렸던 것인지, 언니가 무슨 말을 해서 아줌마의 화를 북돋운 것인지, 학교도 못 가고 갇혀버린 성림이는 하루종일 무슨 일을 해야 했는지 말이다. 그러나 성림이는 이런 사람들도 가족이라고 자꾸만 말을 아꼈다. 사과하느라 꺼낸 저 몇 마디 말 말고는, 내가 묻는 말에 더 이상 어떤 답도 꺼내려 들지를 않았다. 


그나저나 미경이 언니에 대한 이야기는 의외였다. 성림이가 학교로 갈 때마다 아침 일을 조금씩 떠맡아주는 줄로만 알고 늘 고마운 마음이었는데, 언니는 우리와 생각이 좀 달랐던 모양이다. 성림이의 등굣길을 막고 싶었던 언니 마음을 알고 나니 엉큼하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학교 가고 숙제 하느라 일을 등한히 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성림이가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말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언니의 속이 영 짚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 큰 집 안에 목욕탕 사장 아줌마와 자기만 덩그라니 남았을 때의 정적이 참 싫었을 것 같기도 하다. 학교를 제대로 다녀본 적도 없는 자기 앞에서 매일 아침 친구와 그 난리를 치고 공부하러 떠나는 성림이를 보는 심정은 또 오죽했을까 말이다. 얼른 학교로 가라고, 아줌마 몰래 등 떠다미는 자신의 얼굴 뒤로 끼어들고 마는 부럽고, 얄밉고, 원망스러운 마음은 또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싶었다.  


“엄마가 더 지랄하기 전에 얼릉 나가라. 얼릉!” 

아무도 없는 부엌에서도 잔뜩 숨을 죽여서 말을 하던 미경이 언니, 뒤돌아보는 우리를 보고 소리 없이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끄떡끄떡 하던 미경이 언니의 표정을 가끔 떠올려보고는 한다. 식은 땀 줄줄 흘린 이마에 비장하게 눈썹까지 찌푸리던 언니의 표정은 뭐랄까, ‘난 글렀으니 너라도 도망가라’고 당부하는 전쟁터 부상병의 마지막 인사 같은 느낌이라 나는 매번 진저리가 났다. 전쟁터에 나가는 것도 아니고, 남들 다 다니는 학교 가는 길에 그토록 비장한 표정을 짓는 상황도, 그러고 있는 사람도 모조리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아침마다 땀이 찐득찐득하고 볼이 발그레해지도록 뭔가를 하던 두 아이의 모습은 아직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되었다. 식구라고는 목욕탕 사장 아줌마와 미경이 언니, 그리고 성림이 뿐이었는데, 두 사람은 매일 아침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무언가를 한다고 그렇게 서두르고는 했다. 그 아침에 무슨 일이 그렇게나 바빴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 


그 두 아이들의 표정만큼이나 심각하던 또 다른 아이는, 거기에 비하면 참 별 것도 아닌 고민을 했구나 싶다. 오늘은 담임선생님이 지각한 벌로 엉덩이를 때릴 것인지, 악담만 퍼붓고 말 것인지 상상하느라, 매번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길바닥에 서있고는 하던 열 살의 그 아이 말이다. 


9. 성림아 나와라


성림이는 고아원에 동생을 두고 나왔다고 했다. 목욕탕 사장 아줌마가 자기만 데리고 나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질세라 엄마가 언젠가 해 준 우리 언니 얘기를 들려주었다. 나에게도 죽은 언니가 하나 있다고 말이다. 내가 지금 무남독녀인 이유는, 어느 날 그만 엄마 몸에서 칠삭둥이 언니가 빠져버려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은 대로 말해주었다. 


어쩌면 성림이는 내게서 동생을, 나는 성림이에게서 언니를 찾았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마음이 허할 때마다 떨어져나간 조각들을 살피던 우리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보고, 그렇게 구멍 난 곳을 메워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고는 했다. 


“성림아, 나와라. 학교 가자.”

성림이가 책가방을 매고 막 모습을 드러내었다. 성림이가 손을 내밀자 생선 냄새와 참기름 냄새가 언뜻 지나갔다. 오늘 아침엔 고등어를 굽고 나물을 무치고 나온 모양이었다. 성림이는 역시 못하는 것이 없었다. 손목시계로 확인한 시곗바늘이 아홉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따위 것을 보았다고 해서 가슴이 내려앉는다거나 속이 상하는 일도 없었다. 오늘 성림이는 나와 함께 학교로 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의지대로 들고날 수 없었던 저 대문을, 성림이가 열고 나왔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이 스무 개는 드러낸 듯한 성림이 얼굴이 나를 보고 있었다. 어른 손처럼 딱딱하고 단단한 성림이의 손이 나를 붙잡았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사람 잡아먹는 용에게서 공주를 구출해낸 왕자처럼, 욕심쟁이 아줌마를 물리치고 성림이를 구해낸 것 같기도 했다.  궂은 일 다 맡겨놓고 원님 잔치에 놀러간 팥쥐 엄마를 골려준 콩쥐처럼, 신경질쟁이 담임선생의 미션 임파서블을 보란 듯이 격파해버린 것 같기도 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동화책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보면 둘이서 죽고 못 사는 형제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자왕이라 불리던 형 요나탄과 굳세고 언제나 착한 일만 해 온 형과 함께라면 걱정할 게 없다는 동생 스코르판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 사자왕 형제는 사람들을 잡아먹는 괴물 카틀라를 용감하게 물리치고 나서, 못된 도깨비도 잔인한 악당도 없다는 낭길리마로 함께 떠나기로 한다. 목욕탕 사장 아줌마를 물리친 성림이와 나도 이대로 낭길리마로 갈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하고는 했다.


하늘 아래  햇빛 가득 받아 안고 가슴이 터져라 성림이와 학교로 달릴 수 있는 날이면, 마치 세상을 다 얻은 사람처럼 신이 났더랬다. 학교가 정해놓은 그 시간 안에 교실로 도착하든 말든 말이다. 담임선생이 또 지각이라고 눈을 부라리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소리를  지르든 말든 말이다.


“아아, 낭길리마! 형, 보여! 낭길리마의 햇살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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