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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 김상진 기자
  • 등록 2021-07-12 1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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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어른

아이가 셋이다.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좋은 아빠 되기’, ‘아이들과 잘 노는 법’ 같은 내용의 책을 훑어보았다. 아내와 자주 이야기하며 나의 행동을 고쳐 보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 직장으로 오가느라 이른 출근, 늦은 퇴근은 자연히 아이들과 물리적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뭔가 바꾸고 싶다 생각해 작년 초 일 연간 육아휴직을 하며 아이들과 친해졌다. 잔소리가 줄고 이해가 늘었다. 표정이 편안해졌다. 얼마 전 다시 복직하여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은 다시 줄었다. 그러니 이 시점에서 아빠로서 애티커스 핀치를 만난 건 큰 행운이다. 좋은 아빠, 좋은 어른의 전형을 보았다. 그의 언행을 보며 좋은 어른 되는 법을 살피고자 한다.

 


인격적으로 대하기

“우선 첫째, 삼촌은 나한테 내 입장을 말할 기회를 안 주셨어요. 그 대신 곧바로 나를 나무라셨죠. 오빠랑 내가 싸울 때, 아빠는 오빠 말만 들어주는 게 아니라 내 말도 함께 들어 주시거든요.”

p 165

“잭! 어린애가 뭘 묻거든 반드시 그대로 대답해 줘. 지어내지 말고. 애들은 역시 애들이라지만 대답을 회피하는지는 어른들보다도 빨리 알아차리거든. 그리고 대답을 회피하면 아이들은 혼란에 빠지게 되지.”

p 168

애티커스 핀치는 아이를 아이로 대하면서도 하나의 인격으로 대했다. 쉽지 않은 일이다. 바쁜 일상을 사는 사회인으로 직장에 일을 두고 오지 못할 때도 많다. 그저 쉬고 싶은 순간들이다. 이때는 일종의 선택을 하곤 한다. 그냥 아이로 대하거나, 인격으로 대한다는 미명으로 수준을 높이거나. 애티커스 핀치는 변호사로 정치인으로 바쁜 삶을 살지만 아이들 앞에서 아이를 배려하며 인격으로 대하는 두 가지를 절묘하게 해낸다. 몇 번이나 무릎을 쳤다. 

 

우리 셋이서 할머니 집을 방문했을 때 아빠는 모자를 벗어 정중하게 살짝 흔들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듀보스 할머님, 평안하신지요! 오늘 저녁에는 그림처럼 아름다우시군요.” 나는 아빠가 무슨 <그림처럼>이니 하고 말씀하시는 것을 그때까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빠는 법원에서 일어난 소식을 전하시는가 하면, 내일도 건강하시기를 충심으로 바란다고 인사드렸습니다. 아빠는 모자를 다시 쓰시고는 할머니가 보는 앞에서 나를 어깨에 태우고 해질녘에 집으로 돌아가곤 했지요. 총을 싫어하고 전쟁에 한 번도 참가해 본 적 없는 아빠가 이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은 바로 이런 때였습니다.

p 192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애티커스 핀치는 아이들 앞에서 행동으로 보였다. 자신을 욕하는 할머니를 정중하게 대하는 것을 본 딸 스카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이라고 아빠를 긍정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말을 하는 것과 그것을 신념으로 지키며 행동하는 것은 어렵다. 소설 전체를 보면 아이들 앞이라고 일부러 한 행동이 아니다. 그의 인격과 신념이 그대로 삶으로 자연스레 드러난 것이다. 이 부분에서 좋은 아빠를 넘어 좋은 어른으로 넘어가는 지점을 보았다. 

  


신념을 담아 말하기

“아들아, 네가 그때 만약 이성을 잃지 않았어도 난 너에게 할머니께 책을 읽어 드리도록 시켰을 거다. 네가 할머니에 대해 뭔가 배우기를 원했거든. 손에 총을 쥐고 있는 사람이 용기 있다는 생각 말고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승리하기란 아주 힘든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

p 213

아줌마의 말씀 때문에 기분이 엉망이었지만 나를 데리러 온 오빠는 내 기분을 이해해 줬습니다. 오빠가 앉아 있던 곳에서는 내 의상이 잘 안 보였다고 했습니다. 의상을 뒤집어쓰고 있는 내 기분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오빠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싶었지요. 하지만 오빠는 나더러 잘했다면서 내가 조금 늦게 등장했을 뿐이라고 위로했습니다. 오빠는 일이 엉망이 됐을 때 기분을 살려 주는 솜씨가 아빠와 맞먹는 수준이 돼가고 있었습니다. 아빠와 거의 마찬가지라고 해야 할 겁니다.

p 477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한 것인지 신념을 담아 설명한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이 말은 애티커스 핀치가 자신에 대해 가장 적절하게 설명한 말이다. 그는 이 말대로 톰 로빈슨을 지키기 위해 패배를 무릅쓰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변론한다. 아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자기 생각을 진솔하게 드러낸다. 아들은 퍼뜩 이해되지 않는지 반발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아빠의 분명하고 지속적인 메시지는 아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후에 그는 ‘아빠와 거의 마찬가지’의 배려심을 지닌 멋진 오빠가 된다.


“헥, 이 문제를 조용히 무마시킨다면 내가 그 애를 길러 온 방식을 간단하게 부정하는 것이 돼. 때론 부모로서 완전히 실패했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그 애들한테 있는 것이라곤 내가 전부네. 젬은 다른 누군가를 쳐다보기 전에 나를 먼저 쳐다본다네. 나도 그 애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도록 살려고 노력해왔고...... 이런 식으로 뭔가 묵인한다면, 솔직히 말해 난 그 애의 눈을 마주 볼 수가 없어. 그리고 그렇게 마주 보지 못하는 날, 나는 그 애를 잃는 것임을 잘 알고 있고, 그 애와 스카웃을 잃고 싶지 않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그 애들뿐이니까.”

p 504

내가 본 좋은 어른으로서 애티커스 핀치의 정점은 이 말이었다. 아들이 살인자가 될 수 있는 순간이지만 진실은 외면할 수 없었다. 그 이유가 지금껏 아이들과 나누어 온 자신의 신념 때문이다. 이런 멋진 어른이라니. 잠깐 눈 감아도 될 일을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아이들과 쌓아온 신뢰와 아이들에게 형성된 옳은 신념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었을 게다.

 


이정표 되기

“그건 우연이 아니었어. 지난밤에 난 현관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지. 너희 모다가 인도를 따라 걸어오는 것을 지켜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그사이에 이런 생각을 했단다. 애티커스 핀치는 이길 수 없어, 그럴 수 없을 거야, 하지만 그는 그런 사건에서 배심원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들 수 있는 이 지역에서 유일한 변호사야. 그러면서 나는 또 이렇게 혼자서 생각했지. 우리는 지금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거야. 아기 걸음마 같은 것이지만 그래도 진일보임에는 틀림없어.”

p 399

“톰의 배심원들은 평범한 삶을 사는 이성적인 인간 열두 명으로 구성되었어. 하지만 넌 그들과 이성 사이에 뭔가 끼어드는 것을 본 거야. 그날 밤 감옥 앞에서 네가 본 것도 이와 똑같은 거였지. 그 패거리가 발길을 돌렸을 때 그들은 이성적인 인간으로서 그렇게 한 것이 아냐. 그들은 우리가 거기 있었기 때문에 되돌아간 것뿐이지. 이 세상에는 사람들이 이성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단다. 아무리 애써도 항상 공정할 수만은 없는 거야. 우리 법정에서 백인의 말과 흑인의 말이 서로 엇갈리면 이기는 쪽은 언제나 백인이지. 비열하지만 그게 현실인 걸 어쩌니?”

“그건 옳지 않아요.” 젬 오빠가 주먹으로 무릎을 가볍게 내리쳤습니다. 

p 407~408

어떤 인간도 완전할 수는 없다. 애티커스 핀치도 마찬가지다. 굳은 신념을 지키며 최선을 다하지만 시대의 한계도 분명하다. 이 점을 그는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한계의 인정에는 다음 세대가 이루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踏雪野中去 (눈 덮인 벌판을 걸어갈 때에는)

不須胡亂行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말라)

今日我行跡 (오늘 내가 걸은 발자국은)

遂作後人程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백범 김구는 서산대사의 시를 인용하여 말한 독립운동 방식과 비슷하다. 그는 자기 시대에 독립을 이룰 수 없더라도 바른길을 걸을 거라 했다. 그다음 세대에 독립을 이루는 좋은 이정표가 되고자 한 것이다. 애티커스 핀치도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이 그를 더 성숙한 어른으로 만들어 주었다. 아들, 딸이 그다음 시대를 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어른 말이다.

 

[앵무새 죽이기]는 여러 결의 생각할 거리를 주는 좋은 작품이다. 이번에는 좋은 어른으로 애티커스 핀치를 만나는데 치우쳤지만 다음에는 다르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기대를 담아 책을 덮는다.


[출처] [앵무새 죽이기] 좋은 어른 되는 법|작성자 빈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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