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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혜의 그룹홈 생활일기
  • 편집국
  • 등록 2022-02-08 10: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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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년 2월 6일(일) 그룹홈 보육사 일기



<마시멜로>


아주 짧은 한순간의 기쁨 때문에 아주 긴 시간의 힘듦이나 지루함 같은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견뎌지고는 한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부터 반짝하면서 그런 순간이 나를 치고 들어왔다. 그게 나른한 햇빛 때문인지 마시멜로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베란다 창을 뚫고 들어온 햇살이 거실 마룻바닥에 격자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환하게 빛나는 마룻바닥이 고마워서 아침부터 정성을 들여 청소를 하게 되었다. 잠을 충분히 자고 난 다음이라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집 안 구석구석엔 윤슬이와 오순이가 가지고 놀다가 내버려 둔 인형이며 장난감 조각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제자리에 정리를 다 하고 나서 잠을 자자고 잔소리를 하던 내 모습이며, 소리를 지르고 울음을 터뜨리고 실갱이를 벌이던 아이들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어질러진 장난감들이 재잘거리는 어제의 이야기가 귀엽다는 생각까지 했던 것 같다. 맥스 모드로 올린 청소기로 집을 한바퀴 돌고나서 먼지 하나 보이지 않는 바닥을 확인하고는 아침식사 준비를 서둘렀다.


명절에 이어 윤슬이 생일을 보내느라 먹을 것이 많았다. 소고기 불고기에 잡채와 미역국을 덥혀서 상에 내었다. 찐 양배추와 양념장이랑 배추김치도 곁들였다. 꽤 근사한 메뉴였지만 아이들 젓가락질은 내내 시큰둥했다. 며칠 연달아 먹은 음식들이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냉장고 그득한 음식들을 외면하고 또 다른 음식을 만들 수는 없었다. 


이모 이거 다 같이 먹으라고 사신 거예요? 아니 미안. 내가 정신없이 동생들 것만 사 왔네. 미안. 아니에요. 


밥보다는 간식에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밥을 다 먹은 오순이가 꺼내 들고 온 마시멜로 봉지에 모든 아이의 시선이 꽂혔다. 장을 볼 때마다 아이들 수대로 과자를 사 오고는 했는데, 엊저녁에는 그만, 장바구니를 들고 같이 따라 나온 꼬맹이 두 녀석에게만 과자를 한 봉지씩 더 집어오도록 하는 실수를 저질러 버렸다. 


봉지가 크니까 이건 나눠 먹자. 내 말을 들은 오순이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아니에요. 저희는 안 먹을래요. 오순이 인상을 보고 나서 빈정이 상한 큰 아이들이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오늘 아침에는 나무젓가락에 마시멜로를 꽂아서 모두 함께 구워 먹어보자. 어때? 아이들 얼굴에서 하나같이 기분 좋은 빛이 반짝반짝 새어 나왔다. 


아직도 밥을 물고 오물거리는 윤슬이만 식탁에 앉아 다리를 까딱거릴 뿐, 오순이를 비롯해서 밥을 다 먹어치운 큰 아이들이 우르르 일어나 저마다 나무젓가락에 마시멜로를 꽂고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뭐라고 뭐라고 종알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탄 거 아니야? 아니야. 나는 더 태워서 먹는 게 맛있더라. 뭐야, 이거 껍질처럼 벗겨진 부분에서는 완전 달고나 맛이 나는데? 언니는 마시멜로 안 좋아할 줄 알았는데 맛있어하네. 그래, 생각보다 맛있네. 으이이잉~ 나는 완전 다 태워버렸어. 어 그래 많이 타버렸네. 그래도 괜찮아. 언니가 탄 부부만 벗겨줄 수 있어. 벗기고 먹으면 돼. 우와 진짜 진짜네. 언니 고마워. 완전 고마워.


가스레인지 앞에서는 마시멜로 굽히는 냄새가 달콤했고 등 뒤에 비치는 햇살은 환했고 아이들이 즐거워서 내는 웃음소리는 가슴을 벅차게 했다. 오늘은 이사회 자료와 회계자료를 정리해 보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말랑말랑한 마음으로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설거지를 먼저 마쳐야 하겠지만 말이다. 아, 빨래도 세 통 돌려서 널어 정리를 해야 하고, 또또또또, 수시로 이모를 부르며 울음을 터뜨리는 윤슬이와 화가 나서 떼를 쓰는 오순이를 보면서 또다시 복장을 터뜨리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아침 반짝반짝 빛나던 이 순간은, 그 지난한 시간을 겪지 않고는 맛볼 수 없는 선물이었다. 거뭇거뭇 구워진 마시멜로 껍질을 벗겨내고 맛본 그 말랑말랑 새하얀 마시멜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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