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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속의 나, 말 걸어오다
  • 편집국
  • 등록 2022-04-07 08:5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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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은혜

새벽 내내 뒤척였다. 이런저런 내 안의 목소리 때문에 도저히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러게 뭔가가 이상하긴 정말 이상하다는 생각을 내내 하던 중이었다. 엿새 전에 고모가 돌아가셨다기에는 내가 너무 멀쩡한 것 아닌가 싶었으니까. 동시에 엿새 전에 나는 직장도 옮겼는데, 너무 멀쩡한 것 아닌가 싶었으니까. 


이 년간 정들었던 오순이도, 그리고 윤슬이도, 연서도, 아인이도, 동료들도 다 두고, 고모가 돌아가신 날, 나는 새로운 그룹홈에서 새로운 아이들과 새로운 동료들을 만나게 되었다.


지난 주말 이틀 동안에는 상복을 입고 상주인 사촌 오빠와 함께 고모의 장례식장을 지켰다. 그러나 삼 일째 되는 월요일에는 출근을 했다. 고모는 나의 직계가족이 아니었다. 결근을 할 명분이 없었다. 고모와 나의 관계는 평생 그래왔다.


그룹홈을 옮긴 건, 법인 안의 또 다른 그룹홈에서 일하던 동료가 사표를 썼기 때문이었다. 근무시간이 길고, 교대 근무로 생체리듬이 깨지고, 아이들 상황은 긴박한데다, 처우까지 박한 그룹홈 보육사 자리는 자주 바뀌었다. 어쨌든 나는 내가 가장 필요한 그 자리에 가기로 했다.


그동안 써오던 그룹홈 보육사 일기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생생히 담겨 있어서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들의 삶을 담은 글이 혹여 나만 살찌게 하는 상황을 만들지는 않을까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기는 했었다.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되는 내용은 쓰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간 너무 많은 것들과 헤어졌다. 아주아주아주아주 소중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들과. 

그렇다고 마음 놓고 와르르 무너질 수는 없었다. 

나는 정든 이모와 작별을 하고 난 아이들의 마음을 놓치지 않고 들여다보아야 했다. 

아이들의 끼니도, 간식도, 몸도, 옷도, 숙제와 놀이를 비롯한 일과도, 그리고 애정도 구멍 나지 않도록 잘 매만져야 했다. 뿐만 아니었다. 새로운 업무와 역할이 무엇인지 빨리 익히지 않으면, 나 역시도 여기서 계속 일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같은 걸 느꼈다.


이 새벽.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꽁꽁 동여매 놓았던 마음속 목소리가 잠결에 흐트러진 나를 틈타서 이리저리 말을 걸었던 것 같다. 나 지금 멀쩡하지 않다고. 그래야만 하는 상황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내 목소리를 듣지도 못하면서 다른 누구의 목소리를 듣는 삶을 충실히 살 수는 없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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