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에게>
-추신, 나도 네 꿈을 꿔-
사회복지학부 사회복지거시전공 신준영(18학번)
- 윤희가 딸 새봄과 함께 첫사랑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용기를 얻고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
『윤희에게』 Moonlit Winter. 2019년 11월 14일에 개봉한 한국 영화로 2020년 40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감독상, 각본상, 음악상, 영평10선)을 수상했으며, 2021년 41회 청룡영화상에서 감독상과 각본상을 받는 등 연출, 각본, 배우 모두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더불어 영화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평가 지표 중 ‘백델테스트’에서 평가받은 부분이 여성주의적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때 백델테스트란 ‘1985년 미국의 여성 만화가인 엘리슨 벡델이 남성 중심 영화가 얼마나 많은지 계량하기 위해 고안한 영화 성 평등 테스트’로 아래의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가를 판단한다.
첫째, 영화 속에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최소 두 사람이 나올 것 둘째, 이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것 셋째, 해당 대화 소재나 주제는 남자 캐릭터에 관한 것이 아닐 것 |
* 벡델데이 2020 추가 기준
- 영화 제작 과정에서의 양성평등 지향을 위해 감독, 제작자, 시나리오 작가, 촬영감독 중 1명 이상이 여성 영화인일 것
- 여성 단독 주인공 영화이거나, 여성 단독 주연이 아닐 경우 여성 캐릭터의 역할과 비중이 남성 주인공과 동등할 것
- 여성 캐릭터가 성별 정형화와 고정 관념에 갇힌 스테레오타입으로 재현되지 않을 것
- 양성평등의 관점에서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적 시선을 담지 않을 것
한국 영화의 경우 현재까지 남성 중심 서사를 대부분 다루고 있으며, 젠더 개념을 반영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백델데이 2020’ 에서는 2019년 1월 1일부터 2020년 6월 30일까지 개봉한 한국 영화 가운데 벡델 테스트를 기본 바탕으로 자체 심사 기준을 추가해 양성평등과 영화 다양성 진작에 기여한 영화를 '벡델 초이스 10'으로 선정하였고, ‘윤희에게’가 이에 선정되었다. 이는 영화 내용뿐만 아니라 영화 산업 고용에서 성평등까지 고려한 작품으로 평가되었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여성 서사를 다루며 여성을 향한 구체적 불공평함에 맞서고, 성평등을 추구하는 작품인 ‘윤희에게’에 대해 논의를 이어가는 것은 여성이라는 주체를 정확히 이해하고, 현대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와 위치를 확인하며,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긍정적인 시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해당 영화를 주제로 선정하였다.
· 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 및 줄거리 요약
등장인물로 윤희(영화의 주인공이자,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 그의 딸 새봄, 새봄의 남자친구, 쥰(윤희의 첫사랑) 네 명이 영화를 이루어 가는 주요 인물이며, 윤희와 쥰의 가족들을 비롯하여 기타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윤희는 경찰관인 남편과 이혼 후 홀로 딸 새봄과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공장 식당의 배식 도우미로 일하고 있다. 어느 날, 일본 오타루에 사는 마사코가 조카인 쥰이 쓴 편지를 한국에 사는 윤희에게 보낸다. 새봄이 편지를 확인하고, 엄마의 옛 친구에 대해 알게 된다. 이후 윤희에게 오타루 여행을 권유하고, 그곳에서 윤희는 쥰을 마주하게 된다. 시간이 지난 후 새봄과 윤희는 서울로 이사를 하고, 윤희는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
· 보통 여성의 삶
윤희는 과거 한국 여성의 보편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다. 가난한 여성으로 아이를 키우며, 공장에서 시급 근로자로 일한다. 공장에서 일하는 것은 지겹고, 고단하고, 적은 임금을 받는다. 휴가를 사용하겠다고 하자 거부당하고, 퇴사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환경이다. 하지만 윤희는 이 공장에서 일해야만 새봄을 키울 수 있기에 그 삶을 버텨낸다. 가부장제 속 가족을 위한 희생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해당 시대 여성의 삶의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윤희는 보수적 집안에서 자라 사진을 좋아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반면 윤희의 오빠는 남성이기에 대학의 사진학과에 진학하여 사진가가 되었다. 이는 2~30년 전 한국 사회에서 흔히 벌어졌던 일이다. 1980년대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22.2%, 1990년에는 31.9%에 이르렀다. 이는 비단 대학 진학률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2020년 기준 국내 55~64세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은 비율은 18% 수준인데, 25~34세 여성은 77% 정도로 나타난 것을 참고하면, 과거 여성들은 대부분 교육 받기보다 돌봄 노동을 포함한 다양한 노동에 노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속에서 가부장제 속 시혜를 받은 오빠는 윤희의 삶을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고 자신의 방식을 강요한다. 또, 윤희는 부모님과 가족들의 억압으로 원치 않는 결혼을 했고, 딸을 낳고 키웠다. 남편과 이혼 후에도 이혼한 부인에게 술을 마시고 예고 없이 집에 찾아오는 행위의 폭력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전남편을 마주해야 했으며, 이 또한 남성 중심 사회의 다양한 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런 다양한 장면을 통해 윤희가 남성 중심 사회에서 고단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핍박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르지만 유사하게도 일본에 사는 쥰도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가부장제에서 벗어나고, 한국과 일본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며 어머니가 한국인임을 숨기며 살아간다. 한국과 일본은 대표적인 민족주의 국가이며, 소수자 혐오와 차별이 일상화된 국가이기도 하다. 또, 남성 중심적 시스템이 오래 유지되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이런 다양한 부분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크게 모든 ‘소수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여 윤희는 성적 지향을 존중받지 못했다는 점도 간접적으로 표현되었다. 영화 초중반, 윤희는 강제적 이성애의 인위적인 성 범주에 놓여 있으며, 가부장제의 규정에 순응하여 살아간다. 하지만 후반부에서는 자신을 억압했던 모든 대상(오빠와 전남편)을 정리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간다. 또, 쥰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나도 내가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 우리는 잘못이 없으니까.”라며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당당히 살아가고자 다짐을 이야기한다.
· 기존 여성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성별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 따라 구성되는 것이며 구성된 성별 차이가 기반이 되어 성별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중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여성 불평등의 원인을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특성에서 찾고자 하며,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얽혀 있으며, 결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적 차원에서 해당 작품을 바라본다면, 윤희가 겪고 있는 고단한 삶의 구조적 원인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윤희가 겪고 있는 모든 억압을 ‘모든’ 여성들이 동시에 겪고 있다고 본다. 여성들 간의 차이는 어느 정도 존재하겠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부장제의 억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여성들에게 같은 경험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 때문에 남성중심적 사회의 다양한 불균등함을 해소하고 사회 속에서 여성의 위치를 재정의하는 것만이 여성 해방과 사회 정의를 실현할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이때 영화에서 드러나는 윤희 가족의 가부장제적 부조리함, 노동시장에서 중년층 여성이 갖는 불공정함 등으로 현실 상황이 드러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며, 영화 후반 윤희가 자신을 억압했던 가정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자신의 삶을 시작해 나가는 것을 통해 불평등으로부터의 해방을 개인적인 측면에서나마 이룰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 결론
작품에서는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높게 나타나고, 여성들에게 사회적 여성성을 강요하는 코르셋이 강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여성들의 조력으로 윤희의 삶이 회복되고, 위로받는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또, 윤희의 딸인 새봄으로 대표되는 다음 시대의 여성은 윤희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준다고 생각한다. 새봄은 윤희와는 다르게 자기 삶에 대해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주장할 수 있는 여성이라고 본다.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도 본인의 의사를 정확히 전달하고, 이를 존중받는다. 가부장제의 억압 속에서 자신의 주장을 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윤희의 고통을 대물림하지 않으나, 엄마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위로하는 새봄의 모습을 통해 많은 여성들이 위안을 얻었으리라 생각한다.
‘윤희에게’는 여성의, 여성에 의한 영화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 다양한 소수자의 이야기를 함께 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어떤 특정한 상황에 처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아닌, 우리와 같은 것을 공유하고 살아가고 있는 중년 여성의 감정선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공감의 지점을 만들어 가고 있기도 하다. 여성주의적 시각에서는 여성들이 겪어나가고 있는 억압의 지점들을 보여주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윤희는 특별하지 않은 여성이다. 한국 사회에는 수많은 윤희와 닮은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이 존재하고, 심지어는 윤희의 삶보다 더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기도 한다. 윤희의 이야기를 단순히 과거 여성들의 삶의 모습이라고 단순하게 치부할 수 있을까? 여전히 한국 사회는 가부장제의 그늘 아래 있으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차별을 각각의 여성들이 온 힘을 다해 버텨내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쯤 “새봄이 더 배울 게 없을 때까지, 스스로 그만 배우겠다고 할 때까지 배우게 할 작정”이라는 윤희의 다짐에서 윗세대 여성의 고통을 아랫세대로 전하지 않겠다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드러난다. 또, 자신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주체적으로 삶을 구성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와 다짐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윤희의 변화는 굉장히 고무적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이런 사회·구조적 문제와 결함을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하며, 생각의 큰 흐름을 바꾸어 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분명히 구조적으로 모순적이며, 어긋난 지점이 존재하고, 소수자들을 억압하는 기제들이 만연하지만 동시에 이를 정화할 수 있는 행동을 해나가는 사람들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결국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내가 생각하는 여성주의 관점은,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방식이다. 모든 소수자, 사회적 약자를 모두 고려한다는 말은 비당사자의 관점에서 이야기할 때 논리적 비약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궁극적으로 사회적 연대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특정 대상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형태가 아닌,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가부장제와 여성을 억압하는 다양한 기제의 원인과 결과를 바로 알고, 더 많은 사람이 이런 논의에 함께 할 수 있도록 확장해 나가며, 이를 제거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함께 사회적 연대를 형성해 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개인적으로는 사회적 문제에 관한 생각이 뭉툭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며, 연대와 사랑을 이어 나가고 싶다.
참고문헌 | -한국영화감독조합 2020 백델데이 자료집 https://www.dgk.or.kr/#/work/bechdel -김연주. “한국 여성의 현실… 대학진학률 OECD 最高, 경제참여율은 하위권”. <조선일보> 2013.06.28.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28/2013062800336.html -강진구. “한국여성, 대학진학률 80%…절반만 경제활동”. <경향신문> 2005.06.30. |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윤희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