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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하갈의 노래'를 읽고
  • 성희자 편집부
  • 등록 2024-06-04 10: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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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6 서은혜 동문의 글

<언어가 될 수 없었던 신음소리를 담아낸 문자>

- 이승우 「하갈의 노래」를 읽고


「하갈의 노래」는 성서 속 하갈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소설이다. 구약성경 창세기 16장과 21장의 내용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직역에 가까운 번역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다. 성경에서는 생략했던 인물의 내면까지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의역에 가까운 자유로운 번역 같기도 했다. 원작에서 다 말하지 못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무언가를 열렬히 그려내고 창조하고자 애쓴…….


하갈은 아브라함의 첩이자 이스마엘의 어머니다. 사라의 질투 때문에 광야로 쫓겨난다. 스스로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소개한 신이 아브라함에게 “너의 자손이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하고 약속하지만 아브라함 부부는 십 년이 넘도록 아이를 낳지 못한다. 본인이 불임의 원인이라고 생각한 아내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여종의 몸을 빌려 집안의 대를 이을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여종 하갈이 아브라함의 아이를 임신한 이후로 두 여자 모두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된다. 사라는 수시로 하갈이 본인을 깔본다는 호소를 하고, 하갈은 사라의 학대를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사라를 피해 사막으로 도망치던 하갈은 거기서 ‘주님의 천사’라고 하는 존재를 만난다. 그의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와 아들 이스마엘을 낳는다. 이후 사라도 이삭을 낳지만 갈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브라함은 어느 날 먹거리 얼마와 물 한 가죽부대만 가져다가 하갈과 이스마엘을 광야로 내보낸다. 


이승우의 소설 「하갈의 노래」 속에서 그날, 하갈은 말한다. “이건 옳지 않아.” 창세기 16장에서는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자기의 여주인을 깔보았다.’는 문장으로만 존재하던 하갈이었다. 아브라함이나 사라와 달리 자신을 표현한 수단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녀는 ‘서발턴’이었고, 생명을 보호해줄 법조차 없다는 점에서 ‘호모 사케르’였고,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쫓아내고 버리고 밀어내야 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아브젝트’였다. 하갈은. 그러나 이승우의 글 속에서 하갈은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고 말함으로써 표현하고 사랑하고 방어하고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언어가 되지 못한, 될 수 없었던 신음소리’를 담아낸 문자는 희한하게도, 잊고 있던 내 안의 응어리까지도 끌어 모아서 항의하고 울부짖고 호소하는 것 같았다.


● 당신이 섬기는 신이 그런 분이라면, 인륜도 사랑도 짓뭉개는 그런 분이라면 어떻게 경배를 받을까? 그런 분을 위해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는 당신을 누가 존중할까? (p.67)


● 사랑을 보여주지 못하게 막는 신이 있다니. 그런 신을 섬긴다니. 당신은 변명을 하고 있는 거예요. 당신은 당신의 사랑을 보여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보여줄 사랑이 없는 거예요. (p.67)


● 당신이 섬기는 신이 당신에게 내가 겪은 것과 같은 일을 겪게 하도록 빌겠다. 당신이 섬기는 신이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지 못하게 막아달라고 밤낮으로 (p.68)


● 이 세상을 만들고 세상을 이끌어가는 유일하신 분, 당신은 모르는가? 보지 못하는 것이 없는 분, 땅의 신음을 가장 크게 듣는다고 말하신 분이 당신 아닌가? 세상 모든 사람이 모른다 해도 당신은 모를 수 없다. 모를 수 없는 분이 어떻게 모른 체 하는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가? (p.69)


● “진정 당신입니까?” (p.70)


● “들었습니까, 당신이?” (p.71)


● “당신의 그 약속, 바위처럼 단단하고 하늘처럼 영원한 그 약속은 어떻게 됩니까?” (p.90)


소설이 묘사한 것처럼 자기 외에 다른 누구도 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었든, 성경책이 묘사한 것처럼 여주인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었든, 그것은 상관이 없었다. 노예라서, 이집트 여자라서, 테두리 밖으로 쫓겨나야 했던 여자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는 점이 중요했다. 그것은 나에게 엄마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뇌성마비 장애인이어서 투명인간으로 살아야 했던. 친정집에서 쫓아내도, 시댁에서 쓸모없는 사람이라 매도를 해도, 당하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던 엄마가 뒤늦게 내는 목소리였다. 아무리 두드려도 응답하지 않는 친정집 대문 앞에서 몸을 떨던 엄마가 폭발하는 소리였고 시누이의 폭언을 듣고도 어두운 방에 앉아 눈을 부릅뜨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엄마가 울부짖는 소리였다.


“당신은 모르는가? 모를 수 없는 분이 어떻게 모른 체 하는가?”

하갈의 목소리는 어느새 사십 년도 전에 엄마를 지켜보던 내 눈 안으로, 이후로 내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내 입 안으로 고여들고 있었다. 몸이 떨렸다. 


“어머, 손님, 설마 지금 우는 거예요? 책이 슬퍼서? 세상에 나랑 똑같다. 나도 드라마 보면서 울잖아. 슬퍼서.”

하필 미용실이었다. 거울을 마주보는 의자에 앉아 퍼머 롤을 말은 채로 눈이 빨개지도록 책을 들고 울고 있었던 거다. 책이 슬퍼서? 갑자기 끼어든 미용실 원장님 말을 듣고 조금 당황했다. 몸이 떨릴 만큼 무언가에 휩싸였는데 그것이 슬픔인지, 아픔인지, 분노인지, 서러움인지 도저히 떼어서 볼 수가 없는 덩어리였기 때문이다. 눈을 뜨면 보이지 않는 우물을, 굳이 눈을 뜨고 찾아보겠다고 이글거리다가 뜬금없이 흘린 눈물이 무색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하갈의 노래는 눈을 감으면 보이는 우물을 발견하고 나서 끝이 난다. 그 뜨겁던 노래는 ‘신이 그들을 보살폈다’는 문장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전래동화에서나 볼법한 마무리 같았다. 그러나 ‘아들과 함께 부당하게 내쫓기는 하갈을 통해서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이해하고 믿으려고 했다’는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는 고개를 조금 끄덕이게 되었다. 신의 아들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하던 말도 눈을 감으면 보이는 우물이 아니면 삶으로 가닿기 힘든 이야기로 소모되고 말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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