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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관점에서] 세상의 모든 주수인에게-영화 <야구소녀>를 보고
  • 이연주 책임기자
  • 등록 2023-07-04 23:01:12
  • 수정 2023-07-04 23: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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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주수인에게

- 영화 <야구소녀>를 보고 -


경북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김지민(21학번)


어린 시절부터 야구에 재능을 보였던 주인공 ‘수인’은 청소년기가 되면 더 이상 야구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주변의 예상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야구팀에 소속되어 프로야구선수를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남성보다 작은 체구와 약한 힘, 남성 투수보다 느린 구속, 그리고 여자는 프로 야구 선수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이 수인의 꿈을 가로막는다. 수인의 코치 ‘진태’는 힘과 속도가 아닌 ‘공 회전력’이라는 수인만의 장점을 알아봐 주었고, 그 장점을 활용하여 프로리그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렇게 영화는 수인의 끈기와 열정 그리고 주변의 도움으로 프로리그 진출에 성공하여 프로야구선수로의 길을 걸어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영화<야구소녀>는 2019년 1월 1일부터 2020년 6월 30일까지 개봉한 한국 영화 가운데 양성평등의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 유의미한 성과를 낸 영화 10편, ‘2020벡델초이스10’에 등극한 영화이다. 2020 벡델초이스 10의 평가 기준은 1985년 미국의 여성 만화가 엘리슨 벡델(Alison Bechdel)이 남성 중심 영화가 얼마나 많은지 계량하기 위해 고안한 영화 성평등 테스트인 ‘벡델테스트’에서 네 가지 기준을 더한 벨델데이만의 고유한 기준으로 평가하였다. 영화 속에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최소 두 사람이 나와야 할 것, 1번의 여성 캐릭터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것, 1번과 2번 캐릭터들의 대화 소재나 주제는 남자 얘기가 아닐 것, 영화 제작 과정에서의 양성평등 지향을 위해 감독, 제작자, 시나리오 작가, 촬영감독 중 1명 이상이 여성 영화인일 것, 여성 단독 주인공 영화이거나, 여성 단독 주연이 아닐 경우 여성 캐릭터의 역할과 비중이 남성 주인공과 동등할 것, 여성 캐릭터가 성별 정형화와 고정 관념에 갇힌 스테레오타입으로 재현되지 않을 것, 양성평등의 관점에서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적 시선을 담지 않을 것이 그 기준이다.

영화가 개봉했을 때 영화관에서 관람했던 당시에는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지 않았을 시점이라 ‘감동적이고 의미가 깊다.’ 정도의 감상평으로 영화에 대한 감상을 마무리했던 것이 아쉬웠고, 영화가 이번 중간 과제의 성격과 상당히 맞닿아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해당 영화를 고르게 되었다. 

“내가 130 던지는 게 대단한 거야? 왜? 그게 왜 대단한 건데?”

 

영화 속 ‘수인’이가 프로에 입단하지 못 한 이유는 ‘구속’이 가장 컸고, 그 기저에 깔린 전제는 수인이 여성이기에 남성보다 속력이 안 나온다는 것. 그리고 그런 여성이 어떻게 프로야구선수를 하냐는 이유. 누가 저 여성을 야구선수로 보겠냐는 이유 때문이었다. 주변에서는 ‘여자치고’ 구속 130km이면 훌륭한 기록이라며 수인을 ‘유망주’로 삼고 있었지만 수인은 그렇지 않았다. 본인은 여자 야구단이 아닌 프로야구에 입단하고 싶었기에,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이라고 여겨진 스포츠의 세계에서, (특히 여성 프로야구단도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남성에게 국한되어 있는 야구의 세계에서) 자신을 ‘여성’이라는 범주에 국한해 평가내리는 그 시선들이 불쾌하기만 했을 것이다. ‘여자치곤’이라는 말이 수인에게 얼마나 배제적으로 다가왔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이곳은 남성의 영역이니 여성인 너는 이 영역에서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거라고. 그러니 더 이상 욕심내지 말라는 말로 들렸을 것이다. 그러한 시선들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도 구속 150km 정도는 가볍게 던져내는 남성 선수에게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손에 피가 나도록 홀로 남아 훈련을 하던 수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떻게든 사회적으로 규정해 둔 ‘남성’의 영역인 스포츠계에서 버텨내는 그 모습이 낯설지만은 않은 것은 왜일까. 최근 접하게 된 한국 여자배구의 현실이 오버랩 되어 떠올랐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여자부 선수가 받을 수 있는 보수는 7억 원이 최대’라는 규정을 만들어 뒀다. 또한 한국배구연맹 규정으로 인해 여자부 팀은 선수단 총 보수로 23억 원 이상을 쓸 수 없다. 즉, 팀 연봉의 25%인 4억 5,000만 원과 옵션의 50%인 2억 5,000만 원 등을 합쳐 최대 7억 원만 가져갈 수 있도록 설계해 둔 것이다. 해당 규정으로 인해 김연경 선수는 외국 구단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연봉 17억에서 10억이나 낮아진 7억을 조건으로 흥국생명과 계약을 진행했다. 반면, 남자 프로배구에서는 ‘남자 프로배구 연봉 10억 원 시대가 열렸다.’라는 슬로건이 등장할 정도로 여성 배구의 현실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또, 남자부 같은 경우 특정 선수가 가져갈 수 있는 돈의 최대치가 정해져 있지 않다. 게다가, 남자부의 샐러리캡(프로 구단이 선수에게 지불할 수 있는 연봉총액 상한제)은 31억 원으로 여자부보다 8억 원이나 더 높은 금액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러한 연봉의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로 2021-2022 시즌 국내 프로배구 시청률은 남자배구가 0.81% 여자배구가 1.23%로, 국내 인지도에서 여자배구가 남자배구보다 높은 수준을 보이며, 2021 도쿄 올림픽에서도 여자배구의 실적이 남자배구보다 우수한 성적을 보였다. 그 원인이 인지도 차이와 실력의 차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김연경 선수의 성별이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었다면 7억보다 훨씬 더 높은 연봉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에 비추어, 해당 연봉 격차는 성별에서 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스포츠 영역에서 남성선수에게 조건이 우대적인 것은 스포츠는 원래 ‘남성’의 영역이었으며, 신체적으로 여성보다는 남성이 능력치를 발휘할 확률이 높을 것이니 남성 선수에게 연봉을 높게 주는 것이 맞다는 판단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여성 선수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평가절하 당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누가 쟤를 야구선수로 보겠냐는 말을 듣는 ‘수인’이처럼 말이다. 

 

“너 지금까지 남자들처럼 강하고 빠르게 던지려고만 했거든, 근데 너클볼은 그러면 안 돼. 어깨에 힘을 빼고 부드럽게 던져야지. 손이 작아서 공을 덜 감싸서 밀어내지를 못해? 손톱에 힘을 강하게 줘서 밀어내는 힘을 길러.”

 

공을 빠르게 던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네 공을 타자가 못 치게 하는 게 중요한 것이라던 코치 ‘진태’의 말은 관객들의 사고회로에 있어 확실한 터닝포인트가 되었을 것이다. 수인을 남성이 가지는 평가 기준에 맞추어 장단점을 가려내는 것이 아닌, 수인이라는 인물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수인에게는 구속 말고도 ‘타자가 공을 못 치게 하는 방법’이 있었고, 그것이 ‘공 회전력’이다. 수인만의 장점을 살려 너클볼(부상 당한 투수가 사용하는 방법) 기술을 사용해 수인을 억압하고 있던 ‘구속’이라는 기제를 깨부순 계기가 된 것이다. 이는 ‘남성’의 상징으로 규정되어 있는 ‘힘’과 ‘근육’을 가장 우선의 가치로 두던 기존의 남성중심적 헤게모니를 뒤엎은 사건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남성들 사이에도 여성들이 설 자리는 분명히 존재한다. 영화 대사에 나와 있는 것처럼, 빠르게 던져 상대가 공을 못 받게 하는 것이 안 되면 방향을 조절하여 타격이 어렵게 하면 되는 것이다. 손에 공이 모두 잡히지 않으면 손톱을 이용하여 밀어내면 되는 것이다. 무엇이든 남성성의 이미지로 젠더화된 프로야구의 필드에서 수인이 사용한 방법은 획기적이었고, 헤게모니를 뒤집기에 충분했다.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남성중심적인 조직은 경찰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사회적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는 여성 경찰이 떠올랐다. 2018년 10월 부산 여성 경찰과 관련된 '사고 현장 구경' 논란과 2019년 5월 대림동 주취 폭력 사건 등을 거치며, 여경을 '오또캅'이라고 부르는 조롱 및 비판 여론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오또캅'은 '오또케'(급한 상황에서 대처하지 않고 '어떻게 해'만 반복하는 여성을 지칭하는 속어)와 'cop'(경찰관)을 합친 단어이다) 실제로 경찰 간부들은 여성 경찰에게 여성과 아동·청소년 관련 업무만 전담시키거나 남경 업무의 보조적 역할을 부여하고, 경찰은 이미 오랫동안 ‘더 강한 존재’로서 남성성의 이미지로 젠더화됐기에 여성성으로 간주하는 상냥함, 온화함, 감정이입 성향을 유약한 이미지로 평가절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영역에서 강인함만이 정답이 되진 않는다. 즉, 모든 영역에서 남성성만이 정답이 되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남성적 시각에서 보았을 때, ‘남성의 능력’에 비해 못 미치는 여성의 능력치에 비난을 놓으며 많은 영역에서 여성 배제를 야기시킨다. 여성 경찰이 힘만으로 남성을 제압하는 것이 힘들다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 그들을 온전히 상냥함, 온화함, 감정이입적 성향으로 배척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들만의 능력을 즉, 그들만의 장점을 현장에서 발휘할 수 있도록 사회구조적인 변환이 필요하다. 그들에게도 헤게모니를 뒤집을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girls can do anything.”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장 먼저 떠오른 문구이다. 한국에서 한창 페미니즘 사상이 퍼지던 당시, 많은 비난을 받았던 문구로 기억한다. 여자들이 다 할 수 있다더니 그럼 군대를 가라는 둥, 그럼 현장에서 발만 동동 굴리고 있는 여성 경찰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거냐는 둥. 많은 조롱의 여론을 보며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현재의 우리 사회는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남성중심적 사고 성향이 강하며, 남성의 잣대로 평가하는 영역이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 남성중심적 이데올로기가 만연한 조직에서 여성이 힘을 발휘 또 다른 하나의 답을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이것을 여실하게 보여준 것이 영화<야구소녀>라고 생각한다. 모든 영역에서 답은 한 가지일 수는 없으며, 남성과 여성에 국한 받지 않고 무엇이든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그렇게 된다면 위의 문장도 너무나도 당연한 문장이 되어 우리에게 어떠한 감명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쪽이 좋다고 생각한다.

 

주인공 수인의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을 소개하며 마무리하고 싶다. 이것이 세상 모든 수인이에게 귀감이 되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여자라는 것이) 장점이요? 근데 그게 정답은 아니에요. 야구, 그렇게 쉬운 운동 아니랬어요. 빠르고 느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던진 공을 상대방이 못 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니까. 그리고 야구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니까 여자든 남자든 그건 장점도 단점도 아니에요. 저는 볼회전력이 높아요. 저는 다른 선수들보다 힘이 약해서 구속은 느리지만 그래도 이길 수 있어요. 느려도 이길 수 있다고요. 그게 제 장점이에요."


끝으로, 2022년 1월 8일, 호주 멜버른 볼파크에서 열린 애들레이드 자이언츠와 멜버른 챌린지 시리즈 2차전, 6회에서 호주 프로야구 첫 여성 선수인 제너비브 비컴이 출전했다는 소식을 알리며 나의 바람이 혹은 우리의 바람이 차츰차츰 실현되고 있다는 희망을 전한다.


[ 참고문헌 ] 

- 상현호, 김연경 "남자배구-여자배구 연봉 차이, 기준이 궁금했다", ,  2021/08/13,

  https://www.topstar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4621164

- 홍석준, 남자배구 첫 연봉 10억원 시대…그런데 김연경은 7억원, 왜?, <연합뉴스tv>, 

  2022/07/01, https://www.yna.co.kr/view/MYH20220701016900641

- 황남경, 김연경 선수 연봉 7억이 말도 안 되는 이유 : 한국배구연맹은 '여자부'에 한해 한 

  선수가 받을 수 있는 최고 금액을 정해뒀다, <허프포스트코리아>, 2022/06/22, 

  http://www.huffington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119382

- 김하나, "오또케"만 외치는 여경?…'오또캅'은 누가 만들었는가, <데일리안>, 2022/05/08, 

  https://www.dailian.co.kr/news/view/1111271/?sc=Naver

- 한국영화감독조합 홈페이지, https://www.dgk.or.kr/#/work/bechdel 

 

[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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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j2023-07-08 11:05:24

    여성이 모든 것을 잘 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보통의 사람처럼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있는 사람인데.. 사회적 인정을 위해서 모든 것을 잘하려고 했던..
    날을 반성하며

경북대학교 사회복지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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